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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Oct 06. 2022

예술과 나치즘, 과거를 기억하는 법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베네치아에서 2년마다 열리는 미술 전시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는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는 3년 만에 개최되었다.

1895년 예술 활동을 촉진시키고 미술 시장과 베네치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이탈리아 정부와 손을 잡고 계획한 세계 최초의 비엔날레 행사이다. 올해로 127년째 달려오고 있는 행사로서 세계적인 규모와 권위를 자랑한다. 미술사에 이름을 올릴 예술가들을 판단할 때의 지표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본섬의 끝부분인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이탈리아어로 '정원'의 복수 격)에서 메인 전시들이 열리고 각각 장소를 나누어 참여 작가들과 참여 국가들의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아르세날레와 더불어 비엔날레 본관이 자리 잡은 자르디니에는 한국관을 포함한 많은 국가관이 포진해있고 그중 제일 와닿았던 독일관을 소개하려 한다.

현대 미술은 그 무엇보다도 표현과 의미의 일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독일관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이다.

독일관 전경

2022 비엔날레의 독일관 아티스트로 선정된 마리아 아이크혼Maria Eichhorn은 1938년 나치 건축물에 부합하기 위해 리모델링되었고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는 독일관을 해체시켰다. 아니 어쩌면 벗겼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더 올라가 독일관이 바바리안 파빌리온이라 불렸을 당시(1909) 증축되었던 건물의 모습도 보여냈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웅장하고 직선적 성격을 뗘 나치 건축양식에 맞추어 리모델링된 건물의 정면 부분은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선사하며 다른 국가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불어 베네치아의 저항과 기억의 역사를 담은 책자와 함께 베네치아에서 반파시즘 운동이 일어났던 장소들과 유대인 강제 거주 그리고 학살이 일어났던 베네치아의 장소들을 한데 모아 의미를 더욱 짙게 했다.

그리고 비엔날레가 시작됨과 동시에 매주 2회씩 그 장소들의 투어도 진행하며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에 이탈리아의 부끄러운 역사도 자리한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에는 - 예를 들어 로마, 볼로냐, 베네치아, 파도바, 토리노, 트리에스테, 제노바 등 수많은 도시에 - 예로부터 유대인들이 둥지를 틀었던 게토들이 자리한다. 그런데 1943년, 나치 파시즘이 독일 군대를 앞세워 이탈리아 중앙-북부 지역을 점령하게 되고 그렇게 이탈리아 자유 전쟁이 시작되며 베네치아는 역사 안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갖게 된다.

그 시절의 베네치아는 산타 루치아역(도시의 중앙역)으로 향하는 기찻길만이 섬인 베네치아가 육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거의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은 지역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많은 전쟁 피해자들이 자신의 도시에서 탈출해 비교적 안전한 베네치아로 피난을 갔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피난민과 레지스탕스들이 베네치아로 모이는 만큼 파시스트들도 모인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 내 유대인 게토 지구의 역사는 약 5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이탈리아에 파시즘의 뿌리가 내리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탈리아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1938년, 무솔리니가 유대인들에 반하는 인종법(Leggi razziali fasciste)을 제정하면서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학교와 대학에서 쫓겨나기 시작하며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3년 12월, 베네치아에 살고 있던 246명의 유대인들은 잡혀갔고 그중 일부는 게토에 감금되어 아우슈비츠로의 이동을 기다리기도 했다. 246명 중 단 8명만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Relocating a Structure, 2022 독일관 내부

마리아 아이크혼은 비엔날레 독일관의 이야기를 사회적 상황에 맞서는 저항 예술과 결을 나란히 두었다.

시작은 독일관 건축물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역사적 순간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의 순간을 포착하며 그 구조를 뜯어보고 재배치하였다. 재건을 위해 덮혀진 석고층을 뜯어내어 리모델링된 건물 간의 사이를 노출시켰고 건물의 원조 골조를 드러내며 지나간 기억을 상기시킨 것이다.

역사적 순간, 즉 바바리안이라 불리던 시절의 독일을 지나 나치 독일 그리고 현재 독일의 역사적인 여정을 단순히 독일만의 이야기로써 그들만의 역사에 고립되는 것이 아닌 참가하는 다른 국가들과의 상호작용의 장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그 시작과 중간, 끝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한 사람의 선택,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정책이 일으키는 파급 효과 그리고 감히 손으로 셀 수 없는 피해들.

두 차례의 끔찍한 전 세계적 전쟁을 겪으며 예술가들은 현실에서의 아픔을 예술에 녹여내며 관객들과 나누길 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다시 시작되었다.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은 인간의 역사가 반복되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독일관은 구조물의 재배치를 통해 독일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오는 다른 국가들의 역사들에도 귀 기울이게 하였고 더불어 인간 존재와 윤리적 책임이라는 근본적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를 던져주었다.

독일의 과거에 대한 끝없는 자기반성 그리고 타국에까지 본보기가 되는 역사적 반성의 자세는 대단하고 그 용기가 부럽기까지 하다.

마리아는 예술가는 어느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그가 마주하고 있는 어떠한 상황에 대한 행동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하며 비엔날레는 여전히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있다 꼬집었고 권력에 대해 언급했다.

미술계 올림픽이라는 모토 아래 각 국가들은 파빌리온을 세웠고 전시하며 비엔날레에서는 최고의 작가들을 선별한다. 예술이 경쟁이 되는 순간 각 국가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마치 예술가는 국가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도구로서 보이기도 한다. 비엔날레의 권력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독일인 아티스트이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올여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카셀 도큐멘타를 접하는 순간 베니스 비엔날레가 떠올랐다. 올해의 도큐멘타가 직접적으로 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힘을 실어준 것에 반해 비교적 잘 차려진 권력의 밥상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초로 여성 총괄 큐레이터가 지휘봉을 잡은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대부분이 여성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이루어졌고 주제 또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며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동시다발적으로 전시했다. 주목할만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엔날레의 심사위원단은 아시아를 제외한 유럽, 남미, 아프리카, 미국 출신의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었다. 그 권력의 지휘봉이 남성 중심이었던 예술계에서의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쓰였지만 그것은 아시아를 제외한 세계의 사람들에게 귀결되었다.


2년 뒤 열릴 제60회 비엔날레는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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