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대학교 학사를 졸업하다

예술학과(DAMS) 미술이론 졸업 이야기

by 안수진

'이 도시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2017년 토리노에 살던 내가 처음으로 볼로냐를 방문했을 때의 후기이다. 도시의 메인 거리인 Via Rizzoli는 주말 동안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월드컵이 열린 것 같은 인파는 중앙 광장이 광활한 토리노와 비교하면 꽤나 낯선 풍경이었다.

그렇게 일 년 뒤, 볼로냐로 이사를 하면서 볼로냐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볼로냐 대학교의 예술학과 (DAMS - Discipline delle arti, della musica e dello spettacolo)는 인문대에 속해있고 모든 수업이 이탈리아어로 진행된다.

이탈리아의 학사 제도는 한국과 달리 3년제로 180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졸업 논문이 필수이다. 과에 따라 논문 디펜스까지 거쳐야 하므로 이탈리아에서의 대학 졸업은 쉽지 않다고 소문이 나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실이 되어 나에게 적용되었다. (우리 과는 논문 디펜스가 없음에도) 졸업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이는 이탈리아어를 단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4년 차가 되어서야 공부라는 것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로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예술은 인류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아 내외면에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표현적 결과물로, 개인 혹은 집단이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그 언어의 한 장르인 미술을 이야기할 때에는 뿌리가 되는 문학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는 라틴어부터 고대로마의 문학이나 현대의 문학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이십몇 년간을 한국에서만 살던 토종 한국인이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 라틴어를 처음 접했을 땐 마치 미지의 신세계를 마주한 것과 같았다. 더군다나 강의실의 다수가 라틴어나 이탈리아 문학을 이미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온 학생들이라면 그 느낌은 배가 된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조차도 감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들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한 것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IMG_3288.heic 기호학 공부

3학년 기호학 시험에 이탈리아 시인 조수에 카르두치 Giosuè Carducci의 시, San Martino를 가져가야 했었다. 시는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포도주가 와인으로 숙성되는 시기의 자연을 묘사한다. 안개, 바다, 바람, 어느 마을에서 포도주를 만들며 만들어내는 향, 초겨울의 스산한 언덕 등이 인간의 삶을 내외면적으로 표현한다. 더불어 11월 11일은 시의 제목인 성인 마르티노의 축일이기도 한데, 그는 포도주 재배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 시를 수업시간에 배웠던 이론에 적용해 해석해야 하는 것이 숙제였다.

한국어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시를 공부하면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로 뜻을 찾기도 힘든 기호학적 이론들을 차치하고서, 1880년대의 이탈리아어를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야 이토록 힘들었던 문학적 훈련이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눈을 기르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IMG_3279.HEIC 볼로냐 대학교 미술학 캠퍼스, 여성 수도원이었던 곳이 대학 건물이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매 시험마다 다른 종류의 고비가 있었다. 언어 문제는 물론이고 넘쳐나는 방대한 양에 어떤 과목은 소화하는데 1년이 걸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시험 성적은 스트레스와 비례함을 깨달았다. 그토록 하기 싫던 과목도 눈 꾹 감고 할 줄 아는 굳은살도 획득했다.


미술 양식 현상학 과목에서 30 e lode(이탈리아 대학은 30점이 만점, 뒤에 lode가 붙으면 최우수성적이란 뜻)를 받으면서 졸업 논문을 해당과목 교수님과 쓰기로 했다. 한 챕터를 써오면 첨삭을 해주겠다던 교수님께 여름 바캉스 기간 전 제출을 하고 한국을 다녀오니 가을이 되었고 교수님은 돌아가셨다.

인터넷 뉴스에서 부고 소식을 접하곤 머릿속이 멍했다. 학생들과 농담도 자주 하며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가셨던 교수님. 함께 졸업논문을 쓰고 싶다고 찾아갔을 때도 열린 마음으로 맞아 주시던 분이었다. 논문 지도교수는 바로 다시 배정되어 논문은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나, 코로나 기간부터 인연을 맺어 온 교수님에게 지도받을 수 없단 사실이 슬펐다. 다 쓴 논문을 들고 직접 찾아뵙고 감사하다 전하고 싶었는데..

IMG_5947.HEIC 논문과 졸업 월계관. 월계관의 색띠는 과마다 색이 다르다

학사 졸업논문은 3명의 교수가 심사를 보고 3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 논문 점수가 발표되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점수는 3점. 이 분야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학사 졸업 논문부터 제대로 써서 남겨놓으라던 현대미술사 교수님의 말을 맘에 새기며 진행했던 논문이다. 논문을 쓰는 동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거웠다. 시험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것이었다니!

IMG_5892 2.heic 졸업식장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볼로냐 길거리는 샴페인과 노래, 종이가루로 가득 차곤 한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Dottore~Dottore ('도토레', '박사'라는 이탈리아어)"로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난이다 싶었다. 그런데 마무리에 가까워지며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졸업을 한다면 월계관을 쓰고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이 어렵다 보니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끝을 낸 사람들이 잔치를 하는 것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졸업은 축하받아 마땅한 날, 졸업자는 월계관을 하루 종일 쓰고 있는 것이 문화라 한다.

IMG_0255.jpg 졸업자들은 가운데 앉는다

들뜬 마음으로 졸업식장 맨 앞에 앉았다.

졸업식을 진행하는 교수들이 졸업자의 이름과 논문 제목을 호명하면 강당에 모인 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성이 A로 시작하는 바람에 앞 순서에서 바로 이름이 호명되었다. 감격의 순간, 모두가 웃으며 졸업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살며 공부를 하고 싶었던 나는 그 꿈을 이루었다. 비록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 같은 대학 생활이었지만 마침내 끝을 마주하여 빛을 본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이라 함은 대부분 미술원 Accademia이나 음악원 Conservatorio, 패션학교 같은 곳을 떠올린다. 입학 당시만 해도 국립대학 Università의 (심지어) 문과를 졸업한 한국인의 케이스를 본 적이 없어 정보를 찾는데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로지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IMG_1010.HEIC 졸업장. 양피지로 제작되었다

학위를 얻었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인생을 바꿀 요량으로 선택한 길도 아니었다. 다만 공부를 하는 내내 들었던 확신은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계속해서 궁금한 것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미술이론을 통해 이제야 조금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더 깊이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올해 9월 대학원에 입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