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트윈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곧이어 열린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무참히 패하는 중계 장면을 몽롱한 눈으로 지켜보던 내 속은 다시 타들어 갔다. 잊을 만하면 수시로 터뜨리는 삼성 선수들의 홈런 장면은 놀랍게도 리플레이 영상이 아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사랑 엘지 선수들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선택적 음모론자인 나는, 라이온즈 구장이 삼성 선수들만 홈런을 잘 칠 수 있도록 고도의 설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3, 4차전이 열릴 잠실 야구장은 엘지 선수들에게 특화된 곳이어야 했다. 하지만 잠실 야구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홈런을 땅땅 치고 싶어 하는 홈팀에게도 불리한 구장이었다. 그렇다면 팬이 직접 그곳에서 선수들에게 기를 모아줘야 했다. 기뻐하든 슬퍼하든 화를 내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잠실 야구장이었다. 1, 2차전 중계를 집에서 홀로 보고 있던 내게, 삼성 선수가 홈런을 치는 기막힌 타이밍마다 회식 중 밝은 목소리로 전화한 남편과도 거리를 둘 때였다.
이성을 잃은 나는 이번에도 예매에 실패한 후 당근마켓에 접속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어둠의 세계에 들어서자니 찜찜했다. 비겁한 양심을 가진 나는, 판매자가 표를 구했으나 어쩔 수 없이 팔아야만 하는 사연을 갖고 있길 바랐다. 이를테면 ‘여자친구랑 가기로 했는데 어제 헤어졌어요.’ 같은 것 말이다. 전문 판매업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엄청난 웃돈을 얹어서 판매하는 글에 분노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수시로 앱을 드나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1루 외야석 한 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2연석을 샀는데 함께 경기를 볼 한 명을 구한다며, 자신을 40대 여자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표 값도 어처구니없지 않았다. 드디어 귀인이 나타난 것이다! 혼자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 팀 응원의 소용돌이 속에 스며들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한,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도 할 수 있는 여자 사람! 나는 정신없이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표 거래되었나요? 저도 40대 여자입니다. 구매하고 싶어요.’
곧바로 답이 왔다.
‘거래 가능해요. 그런데 저 외야석 처음인데 괜찮으세요? 내야석은 암표도 너무 비싸서요.’
‘네, 저도 처음이에요. 괜찮아요. 가을하늘 보기엔 외야도 좋대요. 홈런볼도 받을 수 있고요.’
‘잘됐네요. 그럼 그날 표도 드리고 돈도 받을게요.’
‘아니에요. 마음의 안정을 위해 예약금 만원이라도 받아주세요.’
‘안 주셔도 되는데 그날 안 오시면 안 돼요. 꼭 오세요!’
귀인과의 훈훈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표를 구한 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나를 본 주변인들은, 자신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MBTI 테스트 결과에서 극 E(외향성)가 나온 사람은 역시 다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범죄영화 마니아인 친구는, 세상이 흉흉하니 혹시라도 귀인이 주는 음료수는 그 어떤 것도 받아 마시지 말 것을 권했다.
대망의 경기 당일 야구장 입구에서 만난 귀인은 매우 씩씩하고 쾌활해 보였다. 이미 채팅으로 내적 친밀감을 형성한 나는 그녀에게 맥주를 사서 건넸다. 싱글인 그녀는 야구 경기 관람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 팀은 물론 상대 팀 선수의 특징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 팀이 크게 실점할 위기의 상황에 머리를 감싸 쥐는 나를 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괜찮아요. 막으면 돼요.’라고 말하니 과연 그대로 되었다. 그녀는 승리 요정이었다. 이보다 훌륭한 경기 메이트는 없을 것이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도 있었다. 내 왼쪽에 파란 유니폼을 입고 홀로 앉아있던 20대가량의 그녀는, 삼성의 공격 차례가 되면 벌떡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저 멀리 대각선 너머의 응원석을 향해 힘차고 정교한 동작으로 응답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서, 마치 수억 광년 떨어진 곳의 생명체에게 포기하지 않고 신호를 보내는 나사의 연구원 같았다. 나는 그녀가 거침없이 흔드는 팔이 내 얼굴을 가격할까 봐 몸을 웅크렸다. 동시에, 지난 경기 때 상대 팀 응원석에서 점프하던 내가 옆자리 남자에게 상당히 거슬렸으리라는 것도, 적지에 앉아 삼성을 응원하고 있는 그녀가 무척 외로우리라는 것도 이해했다. 말로만 듣던 거울 치료였다.
경기는 1대 0, 엘지의 승리로 끝났다. 나는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귀인을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맥주캔으로 건배하고 어깨동무를 한 채 응원가를 부르면서, 인생의 즐거운 순간을 함께 하는 그녀가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는 언젠가 시즌 중에 문득 연락하여 함께 야구를 보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동사적 인간인가, 타동사적 인간인가. 온전히 혼자인 순간을 즐기는 나. 하지만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을 낯설어 하는 나. 그래서 때로는 처음 만난 이와도 뜨겁게 연대하는 순간이 소중한 나. 이토록 나라는 사람 하나에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했으니, 애초부터 하나의 우주와도 같은 인간을 한낱 품사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낯선 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도 힘을 얻는 나는, 단순히 존재하는 인간을 넘어 어쩌면 공존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