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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하 Nov 06. 2024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요 며칠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얼마 전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문득 생각 나서다. 글쓴이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경비원이 한 노부부로부터 욕설을 듣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재활용품과 일반 쓰레기가 뒤섞인 봉투를 수시로 배출하던 부부에게 분리수거 협조를 요청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부부가 ‘경비원 해고’라는 말까지 꺼냈으니, 행여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사무소와 나머지 주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의 수위는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화가 나면 인간은 논리를 아예 상실하는 걸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남자가 되어가지고!’, ‘미국에서는 분리배출 안 해!’ 등의 비논리적 발언도 모자라서 ‘해고’라니. 한 집안 가장의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올 수가 있을까. 섬뜩했다. 


 며칠 후 게시판에 이후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성난 주민들이 부부에게 경비원한테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관리사무소의 중재가 이어졌다. 간신히 마련된 자리에서 경비원이 용기 내어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으나 부부는, ‘다시는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사과도 화해도 아닌 상태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는 글을 읽자 착잡했다. 세상 모든 갈등이 무를 자르듯 깔끔하게 해결되면 좋으련만 그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과거보다 보완된 제도적 장치와 정보 공유로 갑질 사례가 조금씩 줄어드는 듯도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사람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비교적 유연했을 우리의 사고 체계는 나이가 들수록 굳어지기 쉽다. 나의 언행이 아집과 완고함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나, 살면서 조금씩 쌓아 올린 나만의 기준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노부부도, 자신들이 한 언행이 절대 선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당사자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슬플 뿐이다. 다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경우, 뒤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반드시 취했으면 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자세 말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살면서 종종 이성의 끈을 놓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우리의 태도다. 내 언행이 상대방에게 명백한 상처를 입혔을 때, 뒤늦게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용기 아닐까.      


 내 잘못을 뒤늦게 인지했음에도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낯 뜨거운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하면 지는 것 같아서, 상황을 회피하고 나의 과거를 대충 뭉개 버린다면 해결되는 것은 없다. 슬며시 넘어가 버린 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받은 내상은 더 깊어질 뿐이다.  

        

 경비원과 노부부 소동의 결말을 뒤늦게 들은 여러 주민들이 경비원을 찾아가서 위로와 함께 간식을 건넸다는 글이 이어졌다. 타인이 저지른 잘못에 상처받은 이를 외면할 수 없어서, 내 일이 아님에도 용기를 내서 대신 사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비겁함과 몰인간성이, 다른 이들의 이타심과 용기로 덮였다. '타인을 사랑하며 그를 위해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든다'라고 한 소설가 김연수의 글이 생각났다. 노부부의 일을 보며, 앞으로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자문했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 친구' p.316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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