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찾아 떠났지만, 산 정상에서 나를 마주했다.
통역장교 1차 평가가 끝나면 항상 현역 통역장교님들과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같은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많이 놀아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였다.
감사하게도 4군 시험에 모두 합격할 수 있었다. 바삐 달려와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 합격을 하니 숨통이 트이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아뿔싸, 나의 입대 시기가 정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도 했다.
다가오는 입대 시기를 늦출 수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녀봐야겠다 다짐했다. 통역장교 선배님들은 늘 시험 합격 뒤에는 꼭 열심히 놀라고 했지만 1년의 1/4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너무 막연했다. 연희동 집 거실 소파에 누워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가득한 플레이리스를 틀어놓고 누워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곧 머리를 밀고 기훈단으로 가야 한다는 약간의 절망감이 몰려왔고, 이윽고 나는 입대 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국방부의 시계를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나는 이 시간을 그저 가만히 누워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기에는 반년 동안 영어와 통번역 공부만 했기에 쳐다도 보기 싫었다. 책을 읽어 볼까 싶었지만 이미 다 읽어버려 뻔하디 뻔한 책뿐이 남지 않아 이마저도 나의 입대 전 시기를 아름답게 꾸며주지는 못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기훈단에서 낙오하기는 싫었기에 러닝화를 사서 근처 강변을 뛰는 게 나의 일상 루틴이었다.
막연히 시간을 보내기 싫었고, 빌딩 숲 서울에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외가 친인척들이 있는 부산행 티켓을 샀다. 항상 어디로든 떠나면 답이 나오고 길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썼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라도 더 젊고 자유로울 때 더욱 많이 둘러보는 게 좋겠다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떠났고, 그저 입대 전까지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둘러봐야겠다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주어진 길고 긴 휴가 속 나를 발견하고 인생 2막을 걸어가기 전 도약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인생을 살면서 다시는 이렇게 혼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떠나고 돌아다닐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입대 후 나의 삶은 180도 달라질 것이고, 전역을 만약 한다고 하면 그 이후에 삶 또한 치열하고 바쁠 것임을 알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마저 곧 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도 한몫했다.
등산도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면 내 마음도 뻥 뚫릴 것 같다는 마음에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부산은 산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부산하면 바다가 먼저 떠올랐던 나였기에 부산이 산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산을 따라 올라갔는데, 그때 마주한 부산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산을 오르며 이것저것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정말 공군과 해군 사이에서의 선택을 내리고 내가 몸 담을 조직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내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자 오르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생각은 개뿔. 나의 큰 오산이었다. 귓가에 들리는 거라고는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와 턱까지 차오르는 나의 숨이었다. 당시 산을 오르며 드는 생각은 ”그냥 지금에라도 하산할까”와 “기훈단 가서 행군하다 죽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과 군필자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행군이 가장 어려워 “라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나 끝은 언제나 다가오고 Per Ardura ad Astra를 되뇌며 시야에 들어온 정상만을 바라보았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는 부산 시내의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정확히는 힘에 겨워 숨이 턱 막힌 건지 아니면 절경에 막힌 건지 모르겠지만, 이내 나는 배낭을 한 곳에 두고 정상 위 절벽 바위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뿌듯함과 기쁨과 동시에 찾아오는 이뤘다는 생각과 ‘이 맛에 등산을 하는구나 ‘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역시 사람은 시작할 때 좋은 걸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끝났을 때 좋은 걸 해야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을 결정했을 때도 그렇고, 통역장교 시험을 준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할 때에는 어렵고 힘들지만 결국 끝나고 난 뒤 찾아오는 뿌듯함과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등산을 통해 초심을 조금 찾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바삐 움직이는 세상은 멀리서 보았을 때 반짝이고 있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나의 작은 인생도 멀리서 다른 인생들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우리는 홀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함께일 때 가장 빛나는 존재이다. 무수히 많은 빛들 속 작은 빛이라도 나의 역할은 작지 않다. 작은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어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가까이서 볼 때 보지 못한 것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가까이서 볼 때는 놓치던 것들이 한 발자국 뒤로 가서 보니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발견한다. 또 한 발 자국 뒤로 가니, 삶의 아름다움과 참뜻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또 더 뒤로 가서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내가 하던 고민들과 걱정은 사실 별거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사실 너무 낮게 날던 새였구나를 깨닫는다.
해군이냐 공군이냐 라는 갈등 사이에서 나는 본디 훨씬 많은 인생의 답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훨씬 더 본질적인 답들을 찾고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또 세상은 밝고 아름답다.
그 말인즉슨, 나의 인생과 삶 모두 아름답고 빛난다. 그저 한 발자국 뒤로 가 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선 과제와 본질은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나에게 주어진 삶과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인데 우린 뭣하러 헛된 것에 매달리고 살았을까 라며 아무도 없는 산 정상 위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뭐가 되었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걸어보기로 오늘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