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우리 가족은 정든 알제리를 떠났다. 부모님의 얼굴 속 아쉬움은 가득했다. 절반의 원함과 절반의 강제성으로 온 알제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받고 떠날 것임을, 또 떠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 순간이 오면 기쁜 마음으로 떠날 것이라 했지만, 반대로 아쉬움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일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울었던 날들도 많았기에, 눈물이 적신 그 땅을 떠나기란 어렵다. 미소도, 행복도 아닌 눈물이 적신 땅을 떠나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비행시간은 길지 않았다. 모로코는 알제리 바로 옆나라, 지중해와 대서양을 마주하며, 그 유명한 지브롤터 해협이 있는 나라다. 알제리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땅이지만, 한국에 비교해 보았을 때는 여전히 덩치가 있는 나라다. ‘아프리카의 사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알제리에 비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방되어 있고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확실했다. 어린 나에게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왜냐면 일단 맥도널드랑 KFC가 있다는 사실과 스타벅스가 있고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에 내 두 눈은 0_0 휘둥그레졌다. 맞다, 나는 어느새 아프리카 촌놈으로 변모해 있었다.
짧은 2-3시간의 비행 속 마음은 차분해져 있었다. 떠남의 여운은 어느새 새로운 장소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바뀌어 있었고, 역시나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며, 영원할 것 같은 감정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사라지고 기억 저편으로 떠나버리는 보잘것없는 찰나의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네 삶은 유한한데 순간적인 감정을 무한할 것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대게 유한의 것을 무한일 것이라는 착각을 할 때에 인간, 태어날 때부터 사형선고를 부여받은 모털mortal은 가장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인생의 실수는 여기서 비롯된다. 유한함을 무한할 것이라 착각하지 않을 것. 이 사실만 자각한다면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영원할 거야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단지 시간이 흘러 그 모습이 바뀌는 사랑이 있다. 그렇지만 대게 시간의 흐름 속에 변모하는 사랑의 모양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라며 오만한 생각을 대입할 때 비로소 오해와 갈등이 시작된다.
우리의 도착지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였다. G20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도시이겠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나름 남아프리카 다음 가는 인정받는 국가다. 그렇다 한들, 여전히 치안은 좋지 않았다. 알제리에서는 굵직굵직한 위험들이 있었다면, 모로코는 그와 반대로 일상 속 치안이 좋지 않았다. 소매치기, 강도, 성범죄, 납치 등등… 길거리를 외국인 혼자 거닌 다는 것 자체가 당연시되지 않고 또 상당히 위험한 나라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으나, 그 길마저 부모님께서 차로 우리를 데려다주셔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 처음에 학교까지 걸어가다 누나 그리고 내가 차례로 길에서 강도를 만나 휴대폰을 뺏긴 적이 있었고, 이후로 부모님도 번거로우나 우리를 늘 차로 학교까지 바래다주셨고, 학교가 끝날 때 맞춰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현지 아이들이 집까지 차로 가는 이유와 등하교 시간에 학교 앞이 자동차들로 꽉 차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수 있으나,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그런 삶을 영유하고 있다. G20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에 감사하자. 당연하다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공상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 그대로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는 대게 우리가 누리는 것들에, 그리고 우리 일상이 당연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지 못하다. 감사의 조건은 어디서든 언제든 찾을 수 있다. 감사할 것은 Nowhere가 아니라, now here이니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모로코에 도착했다. 바다가 멀지 않은 도시였기에 간혹 가다가 부는 바닷바람과 바다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건조한 알제리에 비해 날씨는 습한 기운이 좀 더 있었다. 길은 그래도 아스팔트가 깔려있었고 무려 신호등이 있었다! 알제리에서 매번 교차로에 서 있는 교통경찰의 모습은 없었으며 길마다 중무장을 하고 서 있던 경찰들과 검문소들 그리고 헌병들의 모습도 여기는 없었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음과 동시에 단 몇 시간의 비행만에 나는 꼭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 몇 시간 떨어진 곳에서는 늘 테러의 위협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데 여기서는 왠지 모두들 평화로워 보였고, 여기서 오는 이질감에 나는 사회적 격차와 부의격차뿐 아니라 안보의 격차가 무엇인지를 어려운 대학강의나 강연이 아니라 몸소 현장에 살며 깨달았다.
공항 마중을 나온 몇 분과 제공된 차량을 타고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동했다. 차 속에서 바라본 바깥풍경, 무더운 여름날에 아스팔트 위에 보이는 신기루까지, 새로운 땅에 왔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길 속, 우리는 모로코에서의 첫 집에 도착했다.
집의 상태는 이제와 생각해 보아도 형편없었다. 낡아 빠진 집에, 가구는 있지만 청소를 하지 않아 그 상태는 말이 아니었고, 천연가스가 풍부한 알제리와는 다르게 모로코는 가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매번 근처 슈퍼에 가서 무거운 가스통을 사서 집에 있는 가스관에 연결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매번 겪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모로코에서 살며, 샤워를 하다 도중에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샤워를 멈추고 가스통을 교체해야만 샤워를 마저 할 수 있었다.
주방에 상태도 좋지 못했다, 정원이 큰 집이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수히 많은 고충들 속 우리 가족을 가장 괴롭힌 건 집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였다.
이슬람에서는 하루에 7번(?)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그 시간이 되면 모스크에서 큰 소리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래(?) 같은 것을 불렀다. 삑사리가 난무하는 형편없는 노래실력을 갖고 있는 이맘이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 소리를 온 동네가 울리는 스피커로 불렀는데, 문제는 새벽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그 소리가 들려 새벽마다 그 소리에 놀래 잠에서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알제리에서도 이 소리가 들렸으나 알제리에서의 집은 모스크와는 거리가 있어 별다른 걸림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스크 바로 옆에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또 아랍어로 주문을 외우는 듯한 그 소리가 당시에는 얼마나 소름 끼치고 무서웠는지, 나는 그때면 혼자 있는 어두운 방이 너무 무서웠었다.
첫날, 집 상태를 돌아보며 모두 탄식을 내뱉었다. 11살의 나는 알제리에서의 포근한 침대와 정들었던 집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곤 집 상태를 돌아보던 엄마의 옷깃을 잡고서는 ”엄마, 우리 집에 가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다. 이제 ’ 우리 집’은 바로 여기인데,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무심코 나온 나의 속마음이었다.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고는 웃어주셨다. 그러고서는 ‘아들, 엄마가 발 씻겨줄까?‘라며 따듯한 물을 받아와 내 작은 발을 씻으시며 “아들 우리 집에 가고 싶어~? 라며 웃으셨지만, 그 뒤에 있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되어 나의 두 눈에도 비추었다. 아마 엄마로서, 부모의 짐을 비자발적으로 같이 감당해 나가는 어린 나에게 무어라도 위로와 미안함을 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의 발을 닦아 주시며 나에게 “엄마도 우리 집에 가고 싶어”라며 미안함과 동시에 부모지만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음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자식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때의 그 모습은 나의 몇 안 되는 선명한 기억 속 하나이며, 당시 느꼈던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살 때는 그렇게 미워하던 알제리에서의 삶과 일상이 그리워지며, 앞으로 이 나라에서 또 살아가고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 밤 나는 큰 침대에 누나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잠을 청했다. 누나에게 그날 밤 “누나는 우리 집에 안 가고 싶어?”라는 나의 질문에 대문자 T누나는 “바보야 이게 이제 우리 집이야!”라고 대답했고 나는 이내 시무룩 해져 이불을 덮고 모로코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대리석 바닥과 목재로 된 침대와 희 벽 색과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모로코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