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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Jan 18. 2024

오만했구나

-아직 못한 숙제를 두고-

3년 전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많이 늙어버리기 전에

보육원에서 나온 청년을 2년씩 교대로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며 사회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돕고 싶다'라고...

60대 후반까지 한 10년간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건강을 회복할 시간을 기다렸다가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그 일이 우리 부부가 감당할만한 일이라 여겼다.

우선은 내가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고

더군다나 내 남편은 자상하고 유머감각도 좋은 데다 성실해서

어린 청년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먼 친척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독립해 사는 우리 아이들도 이런 환경이 익숙했다.

어려서부터 가족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친인척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집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수년씩 같이 살았었다. 


하지만 남편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더 이상 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수년간 같이 살아가는 것 역시 원치 않았다.


남편은 내 바람을 분명히 이해했지만, 선도 정확히 그었다.

남편의 신중하고 온화한 거절에도 한동안 나는 서운해했다.


대체 이게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어딘가에 외롭고 두려운 마음으로 편히 잠 못 드는 청년이 있을  같다.

그 청년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데도 난 그냥 웅크리고 살아가고 있지 싶다.


'언젠가는 이 숙제를 해야 하리, 지금은 미루고 있지만...'

 


그러다가 지난 10월, 갑자기 막냇동생이 3기 암환자 판정을 받았다.

석달 전 7월에 야외수영장에서 우리 모두 며칠간 즐겁게 물놀이까지 했는데

그 새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동생의 치료에 대해 상의했고,

그 결과 11월부터는 암치료를 위해 막내가 우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항암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기 약 열흘 전부터 동생은 매일 침을 맞고 있고,

 매주 하루는 서울의 병원으로 가서 항암주사를 맞고 있다.


투병생활에 동행한 지 꽉 찬 두 달이 되었다.

병원에서 상담받은 대로 식단을 바꾸고(설탕, 밀가루, 튀긴 음식 금지는 기본),

운동스케줄과 취미활동, 감염기회 차단, 정서관리까지

우리 부부가 자유롭게 살던 모습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감기라도 걸렸다간

동생에겐 자칫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입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마스크를 내려야 하는 모임이나 장소에는 가지 않는다.

그나마 응급실도 아무 병원이나 갈 수 없고 서울의 본병원까지 오라고 하시니

환자인 동생은 물론이고 우리 부부도 뒷산에 다니는 걸 빼면 활동반경에 제약이 많다.  


그러다 문득 보육원 청년들에 대한 나의 오지랖에 대해

내가  오만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고 해도

나의 무지와 부족함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선

아마도 그들과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는 훨씬 깊어야 할 것이다.

동생은 수술하기 전까지

앞으로도 4개월 정도 더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고,

수술 후에도 항암주사는 몇 달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젊었을 때는 마음이 가는 곳에 얼른 몸도 달려갔는데

이젠 마음이 가는 곳에 내 몸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괴리가 나의 오만임을 창 밖의 안개를 보며 거듭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관리해서

인생이 내주는 숙제를 두려워하지말고, 잘 해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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