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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Mar 20. 2024

얘기꾼 소질이 없는데

                     -직장맘의 미션 임파서블-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 한글을 배우지 못했을 때는  

내가 동화책을 읽어줬다. 잠자기 전마다.

처음엔 한두 권이던 것이

어느새 세 권이 의무방어전 분량이 되었고,

가끔 다섯 권까지 읽은 적도 있다.


첫 번째 책을 읽을 땐  동화구연 하듯이 나름 애를 쓰며 읽는다.

그러다 두 번째 책을 읽을 무렵부터는 음의 고저가 차츰 사라져 가기 시작하고,

세 번째 책을 다 읽고 나면 성대가 주저앉은 느낌으로 목소리가 잠겨버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동화책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싶다. 글자수가 적은 책을 골랐어야 했는데...

손주들이 생기면 그땐 꼭 몇 글자 안 되는 책만 골라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한글을 깨치고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 날이 내가 동화책에서 해방되는 기념일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범수 가석방은 일주일 정도가 전부였다.  

아이들은 잠들기 전마다  

"엄마, 재밌는 얘기 들려주세요."라며 나를 붙잡았다.

직장생활에 진심이던 나는

육아 의무를 보충해야겠기에 

아이들 곁에 누워서 매일 동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내가 아는 동화들을 재구성해서 들려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얘깃거리가 동이 났다.

궁리 끝에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동화들을 찾아 읽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수많은 동화를 읽고,

그것으로 매일 저녁 새로운 동화를 들려주었다.

이마저도 고전동화 서양동화 창작동화까지 한 바퀴 돌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이라곤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써진 위인전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위인전은 너무 읽기 싫었다.


별 수 없이 어느 날부턴가

나는 도돌이표 동화구연을 했고

또 동화들을 섞는 창작도 시도했는데

희한한 것은 우리 애들이 재밌어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동화보다도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한 번은 내가 얘기를 들려주다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혀가 꼬이더니

내용이 안드로메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작은애가 "엄마, 얘기가 좀 이상해요."라며 지적했다.

나는 퍼뜩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줄거리를 잡아가는 듯싶었으나

어느새 또 헤롱거리다가 말이 뚝 끊어졌다고...

그때 작은애는 엄마가 몹시 피곤한 것을 알아차리곤 조용히 저도 눈을 감고 잤다고 했다.

학자들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이해해 주려는 아량이 그 반대 경우보다 훨씬 크다.'는 그 말에 동의한다.

 

내 목소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꾀꼬리와 전혀 닮지 않았고,

놀랍도록 재밌는 얘기도 아는 바가  없지만

우리 아이들과 도란도란 보냈던 여러 밤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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