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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Jan 05. 2025

 나의 십 대 시절 기억 2.      

-수학공포증-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책을 더듬더듬 읽었고, 공부를 못했다.

특히 산수를 못해서 학교에 남아 부반장에게 따로 배워야 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그런 걸 ‘나머지수업’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머지수업을 받는 학생이 나를 포함해서 대여섯 명에 불과했으니까

도대체 나란 사람, 산수를 얼마나 못했단 말인가!



인수분해니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 이런 말이 나오면

머릿속에 지진이 나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친구들은 다 알아듣고 능숙하게 문제를 풀었다.

‘나만 진짜로 바보구나’싶어 주눅이 들고 수치스러웠다.

하여간 산수는 내게 너무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었다. 국어시간은 재밌었다.   

   

성적이 좀 나아진 중1 때도 과목 간 차이가 컸다.

평균으로 봐선 전교 10% 이내지만,

수학만 따로 놓고 보면 전교 40% 즈음했다.

나의 아킬레스건은 역시나 수학이었다. 

수학시험이 있는 날은 유독 스트레스가 심했다.

시험기간에도 쳐다보기 싫은 수학책이었으니 평소에는 오죽했겠는가!  

   

그러다 중2가 된 어느 봄날,

옆 반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oo아, 니도 공부 잘하제? 그래도 수학은 좀 그렇제! 너거 집안이 다 그렇더라.”   

  

하아! 틀린 말씀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그 말이 맴돌며 기분이 나빴다.

내가 가진 열등감, 나의 역린이 건드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성가신 상황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뽑아낼 수밖에...

그래서 수학공부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수학책만 봐도 울렁증이 생기고 무기력해져 도망가고 싶었지만

우리 집안 전체가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그 울분의 힘으로 버티며 꾸역꾸역 공부했다.

중2가 수학공부를 와신상담하듯 했으니  

공부한 시간에 비례해 성적이 차츰 올라갔다.

1년이 지나자 선두권에 우뚝 섰다. 내 앞에 아무도 없었다.     

    

수학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노력하니까 되는구나' 싶어

좌절하지 않게 되다.

수학을 못하는 DNA를 가졌어도

노력으로 웬만큼 극복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리고 고2와 고3시절, 

수학Ⅱ와 화학Ⅱ를 공부하며 얼마나 재밌고 좋았는지 모른다.

이 두 과목은 문제를 읽는 과정에서부터

도파민보다 강력한 쾌감의 신경호르몬이 뇌에서 슬슬 분비되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궁리하며 집중하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보다 수학을 잘한 친구가 우리 학교에 한 명 있었다.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그 친구나 배선생님께 들고 가면 됐다.

 그들의 창의적인 문제해결방식에 몇 번이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두 사람 덕분에 나는 학력고사 수학 마지막 두 문제도 잘 풀 수 있었다.


 

내가 수학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

철석같이 믿었던 국어와 영어가 차츰 나를 배신하며 멀어져 갔다.

성적이라는 결과는

선천적인 재능보다 후천적인 노력의 영향이 더 컸나 보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영재도 아니다.

끈기 있게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내는 수재엔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학공포증을 극복한 입장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라서 수학을 못하고,

조상님들이 문과이지 이과가 아니라서 수학을 못하고,

또 두려움에 짓눌려 수학을 못하고

기초가 부족해서 수학을 못하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날마다 조금씩 수학 공부하는 양을 1~2년간 늘려가 보라.

또는 방학 내내 수학 한 과목만 하루 15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해 보라.  

그렇게 해도 질적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때 가서 포기해야 당신 자신에게 떳떳할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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