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십 대 시절 기억 4.
-할아버지의 부업-
새로 이사 간 동네 입구에 돌 공장이 있었다.
울타리가 없는 돌공장 옆 인도를 따라 등하교를 하다 보니
석공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서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비석에 글을 새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석공아저씨가 새기는 그 글은
대부분 우리 할아버지께서 쓰신 글이었다.
할아버지의 글씨체는 석봉체 이상으로 정갈했다.
수백 글자를 술술술 쓰시니 아마도 돌공장에서 매우 고마워했을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돌 위에 붓으로 써놓으면 석공아저씨가 부지런히 다음 작업을 하셨다.
하루는 학교에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는데
석공 아저씨가
"‘저기, 저기 학생"하며 달려오셨다.
“무슨 일이신데요?”라고 묻자
부끄러워하면서 “학생, 이 비석에 있는 한자를 다른 걸로 좀 바꿔줘.”라 하셨다.
“어떤 글잔데요?”하니까
손가락으로 비석의 맨 아랫줄에 있는 0000年 00月 00日을 가리키셨다.
아저씨의 요청은 ‘한자로 쓰인 숫자를 아라비아숫자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한자를 잘 모르니까
최소한 날짜라도 알아보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분이시라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를 읽긴 해도 쓰시진 않았다.
그 시절 신문의 주요 글자는 전부 한자였고,
한글은 조사나 감탄사에나 사용됐었다.
100% 한글로 인쇄된 신문(한겨레신문)은 내가 대학생이던 1988년에야 처음으로 등장했다.
한글이나 아라비아숫자 쓰는 게 자신이 없으셨던 두 분은
그날 내가 하교하기만을 기다리신 듯했다.
다행히 나한테는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즉시 아라비아 숫자를 깔끔하게 써드렸다.
석공아저씨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내게 이런 요청을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지갑이 두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양치 않고 붓을 들었다.
다음에 고향에 내려가면
할아버지께서 남들에게 써주신 비석의 문장들을 자세히 읽어보고 와야겠다.
오래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땐
그 문장들이 마음에 썩 와닿지 않아서 잠깐 읽다가 말았는데,
어떤 내용들을 쓰셨는지 다시 읽어보고픈 호기심이 최근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