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500이 날아갔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공돈을 벌어보겠다고. 나도 모르게 밀려 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과자를 줬다 뺐으면 아이가 느낄 상실감과 처참함이 이런 게 아닐까?
앞으로 장난이라도 아이에게 그런 짓은 절대 하면 안 되겠다 다짐해 본다.
옆에서 보던 남편도 나의 참담함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여보,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맥주 줄까?"
마음속에서 500만 원을 애써 지운 나는 허탈한 마음에 '일이나 하자.' 하고 다시 업무 화면을 켰었다. 그런데 마침 건네온 남편 말에 다시금 왈칵 눈물이 났다.
남편이 건네준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놀래고 실망했던 마음을 다독여본다.
술기운인지, 아니면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오는 건지 생각할수록 자꾸 웃음이 났다.
이게 무슨 시트콤도 아니고.
결국 남편에게 털어놓고, 같이 아쉬워하는 동반자를 만들고선 그날은 둘이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셨다.
괜히 죄 없는 유치원과, 눈을 함께 욕하며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어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남편이 물었다.
"근데 자기가 왜 일할 팔자야?"
"응? 내가 그랬어?"
"자기가 그랬잖아. 평생 일할 팔자라 이런 거 안 될 줄 알았다고. 어? 근데 진짜 안되긴 안 됐네?"
놀리는 남편을 살짝 째려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그게 말이지~."
오랜만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아마도 내 나이 24~25 정도였을 것이다.
친했던 동기 두 명과 압구정에 놀러를 갔더랬다. 3교대 간호사로 일하는 우리는 오늘을 위해 오프(쉬는 날)를 신청까지 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나이트 오프가 걸렸다.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에 퇴근했지만 이런 날을 놓칠 순 없다며 잠은 밤에 몰아 자는 거라며 나는 기어이 놀러 나왔다. 딱 두 시간 자고 나왔지만 젊디 젊었던 시절 아닌가.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며 맛집도 가고 구경도 하고 다녔다. 젊음 자체로 뭐든 할 수 있는 싱그러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밤을 새우고 온 내가 걱정되었는지 한참을 구경하다 누군가 의견을 냈다.
"우리 사주카페 갈래? 희진이 좀 쉬기도 해야 하고. 어때?"
하고 의견을 내놓는다.
마침 사주카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사주? 점?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보던 게 전부였던 나에게 사주카페는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무당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아무리 카페라지만 무서운 조상신이 노려보고 있는 그림 이 있다거나 화려하게 차린 무당이 앉아있는 건 아닐까? 그런 데를 가자고? 진짜?
호기심 반, 두려움반.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이기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사주카페 체험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나의 평생 일할 팔자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