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가게 폐업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작년 9월, 스치면 일단 들어가고 보았던 단골 가게의 마지막 영업일을 통보받은 직후 한동안 가벼운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승이 반찬'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곡식 창고이자, 아무런 구속과 부담감 없이 서로의 호의를 드러낼 수 있는 복덕방 같았던 곳. 김치찌개, 불고기, 고등어조림 같은 메인 음식은 주로 내가 해 먹었지만, 각종 나물, 연근조림, 멸치볶음과 같은 밑반찬은 대부분 '승이'에서 공수해 먹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고, 이제 요리 독립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직감이 왔기에.
사실 매일 반찬을 사 먹으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남에게 의지해 식탁을 차려야 하나'에 관한 고민은 있었다. 단돈 이만 원이면 5-6가지 반찬을 손쉽게, 골고루 살 수 있는데, 그걸 위해 장 보고, 일일이 손질하고, 만드는 데까지 드는 시간과 노동이 비효율적이고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에겐 반찬을 사 먹는 게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똑똑한 행위였던 것이다. 때론 사는 게 돈 버는 거라는 전제 아래 다 먹지도 못할 양을 기분 따라 쓸어 담기도. 마치 다이소에서 부담 없이 쇼핑하듯이 말이다. '이것도 주세요. 이것도. 어찌 되었든 내가 한 것보다 맛있고 저렴해!'
이런 일상에 현타가 오기 시작한 게 영업 종료일을 통보받은 그 즈음이었다. 언제부턴가 사 먹는 게 지겨웠고, 돈 아깝다 느껴졌다. 나물이야 아직 미개척 영역이라 해도, 오징어채 같은 반찬은 직접 해먹는 게 남는 장사 같았다. '마트에 가면 진미채 한 봉지에 8000원 선인데, 가게에서 파는 건 한 주먹 밖에 안 되는 양이 뭐 이리 비싸?' 그렇게 본격적으로 요리에 입문했다. 결혼 13년 만에, 단골집이 사라져서. 물론 지금도 다른 곳에서 나물 반찬을 사다 먹는 건 여전하지만, 내가 일정하게 안정된 맛을 내는 요리, 처음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요리가 많아졌다. 진미채, 견과류 폭탄 멸치볶음, 삼치 조림, 코다리조림, 뼈다귀 감자탕…. 그중 뼈다귀 감자탕은 한두 번 만으로도 동거하는 세 남자의 감동을 자아내어 어제도 특별 청탁을 받는 메뉴가 되기도.
"자기야. 자기가 해준 뼈다귀탕 먹고 싶다. 큰 솥을 사 와야 하는데 말이야"
"나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마. 내가 좀 착해서 자꾸 먹고 싶다 하면 하게 되거든"
그러다 이제는 쇠고기 장조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장조림에 눈 뜬 계기는 말 그대로 우연하게도. 정육점에 목살 한 근을 사러 갔을 때였는데, 어떤 여성분이 장조림용 고기를 사는 것을 보고 '아, 다른 사람은 장조림도 직접 해 먹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몇 마디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장조림이 세상 쉬운 요리라는 것. 애용하는 사이트에서 구매해 둔 깐 메추리알도 있겠다, 즐겨 먹는 장조림 제품이 도무지 할인할 기미가 안 보여서 (정가로 사 먹을 바에야 명륜진사갈비에서 외식하는 게 나음) 충동적으로 재료를 구매했다. 어느 부위를 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장님이 알아서 주시는 '양지' 부위를. 그것도 한우로 말이다.
돈을 질렀으니 레시피를 찾아야 했다. 요리의 시작은 어떤 블로그, 어떤 레시피를 만나느냐에 따라 반은 성공. 하루 방문자가 수백 명, 수천 명인 인플루언서라도 서술이 길거나 계량이 명확하지 않으면 패스하고, 쉽게 시도 가능한 포스팅이 필요했다. 두 블로그로 압축한 결과, 시간은 좀 오래 걸리지만 물과 간장의 용량이 정확한 레시피로 당첨! 시킨 대로 고기의 핏물을 빼고, 양파, 파, 통후추를 넣어 끓인 다음, 끓어오르기 시작했을 때 미림을 두 스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1시간 30분. 마지막으로 통마늘, 꽈리고추, 청양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처음 하는 요리라 그런지 간 보기가 알쏭달쏭했는데, 어느새 손가락으로 집어먹고 있는 윤슐랭 가이드의 소감을 듣고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맛있게 잘 됐네. 간이 잘 배었어"
연이어 시식에 들어간 다른 두 남자의 극찬(?)이 이어지자, 문득 내가 지나온 요리 도전의 역사가 떠올랐다. 멸치볶음에 간질 나게 들어있는 견과류가 아쉬워 직접 해 먹기 시작했고, 친정에서 업소용이 아닌가 싶을 만큼 챙겨준 '무'를 없애고자 조림 요리에 도전까지. 결국, 내 결핍과 식재료 썩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 나를 요리로 이끈 셈이었는데, '가게 문 닫음'이라는 결정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요리에 발 담그지 않았겠지. 게다가 요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고 써는 과정에 의외로 몰입이 잘 되고, 대량 생산해서 주위에 나누는 기쁨 역시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잘 먹으며 엄치척 해줄 때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보면, 당시 내게 닥친 위기가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결핍이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던가. 적어도 내 요리의 세계에서만큼은 그런 듯 보였다. 반찬 가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당장 할 줄 아는 음식부터 만들기 시작해 종류와 스케일을 확장했고, 이제 어지간한 요리는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으니 (오이, 가지 요리 제외) 블로그에서 만만한 레시피를 탐색하는 게 재밌어졌다. 큰 아들이 말하기를, 승이 반찬이 없어진 뒤 엄마가 맛있는 요리를 해줘서 자기한테는 더 이득이라고. 역시 내 아들! 아들의 칭찬이 요리에 감흥 없던 여자를 지지고 볶게 만드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인이 들어갔길래 10봉지나 주문하고 말았네? 아직 요리 정복을 꿈꾸기엔 갈 길이 멀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