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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Aug 12. 2022

04. 캠핑카 여행

#2 여긴 미국인가, 중국인가. 앤터로프 캐니언

 나바호 원주민의 가이드 아래 투어로만 입장할 수 있다는 앤터로프 캐니언은 윈도우 배경화면으로 유명해지면서 투어 티켓팅부터 전쟁이었다. 하루에 입장 가능한 인원을 제한하고 투어 횟수가 많지 않으며 오래전부터 여행사에서 단체로 예약을 해두기 때문에 우리처럼 코앞으로 닥쳐야 예약하는 개별 여행자는 그 전쟁의 패배자였다. 그렇지만 타격감은 없었다. 애초에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깐. 너무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면 최대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제거하여 90% 이상 이뤄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던지 아니면 이뤄지는 게 아주 힘든 거라며 덜 실망할 수 있도록 기대하지 않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이 경우에는 후자. 그래도 끝까지 노력을 해야 후회는 없기에 매표소를 방문했다. 운이 좋으면 현장에서 추가 표를 구할 수 있다던데 그 운 좋은 사람이 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예상 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미국 앤터로프 캐니언

 앤터로프 캐니언의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 그 뒷면의 고생스러움과 아비규환의 현장은 담겨 있지 않다. 우린 그 사진 속 비하인드 신을 경험했다. 앤터로프 캐니언은 돌발홍수에 의해 사암이 침식되면서 형성된 것이어서 모래 먼지를 부산물로 만들어내었다. 투어 시 마스크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고 강제 모래 샤워가 포함이었다.


 비하인드의 하이라이트는 우리 팀의 빌런들이었다. 앤털로프 캐니언 투어는 한 명의 가이드가 약 10-15명의 관광객을 이끌고 협곡을 지나는 방식이었고 우린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함께 한 팀이 되었다. 영어로 설명하는 가이드에게 중국어로 질문인지, 대답인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중국인들 열댓 명과 함께 말이다. 그들은 가이드의 지시를 무시하고 맘대로 행동하는 통에 가이드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커졌으며 이따금 갈라지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팀 앞뒤 모두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었고 그들끼리 나누는 시끄러운 대화에 우리의 청각 기능이 저하되는 것 같았다. 협곡 사이를 걷는 이 투어는 너비가 넓지 않아 일방통행만 가능하며 1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유입되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즉, 마음에 드는 단독샷을 찍기 위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온갖 포즈를 취하는 순간 인터내셔널 진상 여행객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예상에 한치도 빗나가지 않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포즈를 취하며 인생 샷에 몰입했다. 인생 샷이 대체 뭐길래.


 종합적으로 볼 때 살짝 뒤통수 맞은 것 같은 께름칙한 행운이지만 그래도 앤터로프 협곡에 입장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우린 인생 샷보다는 감상에 포커스를 맞췄고 가이드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우리에게 고마웠던지 어느 각도에서 어떤 필터로 찍어야 협곡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담아 갈 수 있는지 조언을 해줬고 그 결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주 흡족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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