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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매통역사 Oct 16. 2024

야매통역사의 7년 생존 노하우 (2/2)

통역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앞선 글에서 제 소개를 드리고, 통역사로서 걸어온 좌충우돌 생존기를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은 두 가지 핵심 질문, 즉 통역은 왜 어려운가, 그리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 서머리 형식으로 압축시킨 게 이번 글인데, 전체 시리즈도 이후 업로드할 계획입니다.


Is interpretation difficult?

제가 존경하는 미군 장성 한분께서는 트위터에 이렇게 올리신 적이 있습니다:

“Good interpreters are worth their weight in gold.”


미군은 전 세계적으로 여러 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통역사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큽니다. 그리고 우리 국군과 상시 접점이 많은 주한미군의 고위급 장성이라면 누구나 비서실에 전속 통역을 두고 있을 정도로 인재확보를 확실히 해두는 편입니다.


반대로 통역사라는 직업이 AI 통역 솔루션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습니다. 실제로 최근 LLM (Large Language Model) 분야의 기술적 약진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가속화되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솔루션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갤럭시 플립을 반쯤 펴서 태국 음식점에서 태국어로 매운 음식 먹을 수 있다고 AI 통역을 통해 주문하는 선전이 기억나네요.


근데 그렇다면 왜 미군 장성은 통역사 보기를 금 보듯이 하셨을까요?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혁신을 이끌어낸 분야가 방산기술이고, 그 최선두에 있는 미군인데 왜 굳이 통역사는 정말 중요하다고 선언을 하셨을까요?


어려우니까 잘하는 통역사가 중요하죠. 통역, 진짜 어렵습니다. AI 때문에 멸종하는 게 아니냐고 수 없이 질문을 받았지만 자신 있게 사람 통역사도 확실한 니즈가 있다고 말합니다.


통역이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통역을 실제로 현장에서 수행하는 관점입니다. 사업에 빗대면 오퍼레이션인데, 통역사가 발화자의 말을 알아듣고 도착어로 변환해서 상대방에게 얘기해 주는 통역 그 자체의 행위와 이를 위한 배경조사 등을 포함합니다. 두 개 이상의 언어에서 원어민급의 역량을 보유해야 하고, 뛰어난 멀티태스킹과 암기력, 숙련된 노트테이킹 체계, 효과적인 전달력과 언어적 센스 등이 필수입니다.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입니다.


두 번째로 전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전자인 오퍼레이션이 노력과 연습의 영역이라면, 전략은 고민과 선택의 영역입니다. 다른 표현을 써보면 전자는 해석의 영역인데 후자는 이해의 영역입니다. 같은 한 마디를 놓고도 그 상황의 수많은 변수를 놓고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 다양한 해석 중에 선택을 하려면 이해가 필요한데, 이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어떻게 통역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기반해야 합니다.  심지어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찰나에 내야 합니다. 동시통역이던 순차통역이던 클라이언트는 고민이 필요한 퍼즐을 매 순간 제시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퍼레이션만 놓고 보면 사람이 AI를 이기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미 출시된 서비스를 이용해 보면 제가 보기에도 꽤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통역을 해냅니다. 전에 60명짜리 회의를 혼자 통역한 적이 있는데, 모둠별 토의로 넘어가며 각 모둠은 구글번역기로 소통하는 대신 잘 안될 때 제가 개입했었습니다. 근데 꽤 잘 돌아갔습니다. 그 정도 수준까지 왔습니다. 거기에다가 사람은 헷갈리고 피곤해하지만 AI는 그럴 일도 없습니다. 되려 데이터가 더 입력될수록 배우고, 더 정확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 통역사가 AI한테 따라 잡힌 게 아니냐는 의견이 생깁니다.


그러나 전략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되려 AI가 사람에게 범접하기 힘듧니다. 왜냐면 통역 오퍼레이션에선 AI가 언어적 Input을 처리하지만 통역 전략의 관점에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해에 따라 같은 말을 들어도 통역을 달리해야 하는데, 세 가지 고민의 영역이 있습니다.


먼저, 굉장히 다양한 Input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어디까지를 소위 '유효타'로 인정할 것이냐는 포인트입니다. 발화자의 말만 Input으로 판정하기엔 은유나 함축적인 메시지를 엉뚱하게 해석하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상식과 배경지식을 최대한 고려하기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Input을 어떻게 조합하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명확한 기준 없이는 해석 중에 선택을 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통역에서 얼마만큼의 자유도를 가져갈지에 대한 고민으로, 특히 Input으로 인해 상충되는 해석이 발생하는 경우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발화자가 말이 헛나와 연매출을 1000억 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했다면 고쳐야 할까요? 웬만한 사람 통역사는 고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적분을 설명하는데, 틀리진 않았지만 마침 통역사가 미적분을 잘 안다면 클라이언트의 설명을 개선해서 말해도 될까요? 어려운 개념을 클라이언트가 그냥 언급하고 넘어갔다면 부연설명을 해야 할까요? 어느 수준까지 통역사의 개입을 인정할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언어적 요인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유머는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손짓발짓과 표정은 통역에 어떻게 반영할까요?


AI는 일단 다양한 Input을 통역에 필요한 찰나의 순간에 입력받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센서를 달아주고 AI가 전방위적인 정보수집을 하도록 개발할 수 있겠지만 Privacy와 보안 측면에서 우려사항도 생기겠죠. 감정을 어떻게 반영할지, 얼마만큼의 자유도를 원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결국 사람 통역사 관점에서는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AI가 클라이언트를 그 정도로 해석하기엔 당장의 실효성이 부족합니다.


일례로, 전에 협상 자리에서 내용이 잘 안 풀려 제 클라이언트가 외마디 욕설을 뱉은 적이 있습니다. 오퍼레이션 관점에서는 외마디인데 어려울 이유가 없죠. F로 시작하는 단어로 딱 전달해 주면 되었을 것입니다 (짐작하시는 쌍시옷의 그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전략의 관점에서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합니다:

과연 발화자가 욕을 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감정에 못 이겨했는가?

우발적으로 뱉었다면 후회하고 있을까? 전달되지 않길 바라지 않을까?

의도적이었다면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F*** 한 단어로 지르는 것이 그 효과에 가장 부합하는가?


결국 무슨 말이냐면, 발화자가 '진정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통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1:1 대화에서도 서로의 의도를 오해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 와중에 통역의 오퍼레이션 측면을 꼼꼼하고 타이밍 좋게 챙기면서 입체적으로 발화자를 이해하는데도 두뇌를 할애해야 하는 것입니다. AI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사람도 고도로 훈련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니까 통역...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AI도 당장 우리를 내보내기도 힘들고,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몸값이 금값인 것입니다.


What does it mean to be a 'good interpreter'?

그래도 아무나 몸값이 금값이 될 수는 없겠죠. 'Good interpreter', 즉 잘하는 통역이 되어야 합니다.


앞선 섹션에서 AI와 경쟁을 언급하며 통역의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오퍼레이션 측면에서 통역의 기술과 언어를 갈고닦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얘깁니다. 통역의 기술은 통번역대학원이 의심의 여지없이 베스트 옵션입니다. 여건이 안된다면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리소스도 많습니다. 경험 많은 통역사의 멘토링받는 것도 방법이죠. 하지만 결국에는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언어도 당연히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에서도 뇌가 자동으로 듣는 말을 통역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쓰는 대로 발전한다고 하죠. 뇌에 새겨질 때까지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답입니다.


전략 측면은 발화자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지, 혹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퍼즐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한 ‘이해력’을 키우는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말이 쉽죠. 더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 솔루션을 구하기 위해 발화자의 메시지에 대해 통역사가 접수할 수 있는 모든 Input을 정의해 보았습니다. Input의 조합이 중요하다면 모든 Input을 일단 알아야죠. 내뱉는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바디랭귀지가 있고, 심지어 주변 배석자들의 반응도 살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통역사가 이미 머릿속에 탑재하고 있는 상식과 배경조사를 통해 습득한 지식도 있죠.


모든 Input을 당연히 다 고려할 순 없지만, 어디까지를 유효한 Input으로 볼지 결정해야 한다면 전체 리스트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후 내가 무슨 무슨 Input은 받고, 나머지는 안 받겠다고 마음의 정리를 하고 통역에 임하면 불필요하게 여러 가지 해석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야매적으로) 이런 고민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명확히 할 수 있을지 저만의 프레임워크를 구했습니다. 소통은 결국에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듣는 사람의 생각으로 되기까지 표현과 전달의 과정인데, 이걸 일명 '소통의 밸류체인'으로 정리한 겁니다. 그럼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 통역할 때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입장으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여기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죠.

핵심은 '결정'입니다. 사실 범주를 크거나 작게 가져가는 것은 통역 본연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말하는 것만 Input으로 받는다, 즉 Talking 만 유효하게 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해석이 나올 것입니다. 그 해석을 뛰어난 언어적 역량으로 전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전략의 핵심은 '사전 고민'입니다. 그 아무도 현장에서 전략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전에 자체적인 고민과 Soul-searching을 통해 본인에게 소통의 의미가 무엇이고, 소통의 가치사슬 내에서 통역사로서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통역의 기술도 갖춘 소통의 전문가로서 거듭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다른 고민의 해답은 모든 밸류체인에 걸친 사고를 하는 통역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발화자의 발언 (Talking)에만 집중하는 게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AI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람으로부터 Input을 받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Input을 넣어주려니 통역으로 쓰기엔 시간 텀이 너무 길고, AI가 자체적으로 Input을 수집하라고 장비와 코드를 개발해 주기엔 정보보안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사람 통역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 약점을 파고들어 입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Interpreters matter

잘하는 통역사가 되는 것은 업계에서 경쟁 중인 통역사 개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글로벌 파트너십 차원에서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물론 어떤 Input 조합이 좋고, 그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다루려면 글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이 포스팅을 토대로 보다 긴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소통 밸류체인을 가지고 제가 생각하는 소통과 통역의 본질, 그리고 이 본질을 토대로 그 어려운 통역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정확히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더 밝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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