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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매통역사 Oct 16. 2024

야매통역사의 7년 생존 노하우 (1/2)

통역사로 살아남은 제가 용해서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Who am I and why am I writing

저는 7년 차 통역사입니다. 횟수로 치면 약 300건의 통역 이벤트를 경험했습니다. 2017년 공군통역장교로서 통역에 입문한 이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공군과 국방부 고위인사들을 통역했고, 현재는 기업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하며 통역사 역할을 겸업으로 통역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꽤 전문가로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개인적으로는 살아남은 게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군생활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이었고, 유학생이었던 터라 통역으로 입대하면 영어도 유지되고 좋겠다는 생각 정도였으니까요. 통역사로서 꿈을 키운 적도 딱히 없었던 것입니다. 입대를 위한 통역시험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는 통역을 어떻게 잘할지, 통역사로서 어떻게 성공할지 사전고민을 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통역사의 현장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영어는 어릴 때부터 해왔어서 자신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매 통역을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을지에 대한 궁리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통번역 학위를 가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별다른 생각 없이 업계에 발을 들였기에 매 순간 다양한 딜레마를 겪었고, 각 현장마다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예컨대 욕하면 뭐라고 통역할지, 화내면 나도 화내야 할지, 농담을 웃기게 통역 못하면 분위기는 어떻게 다시 살릴지 너무 고민되었습니다. 혹은 클라이언트가 뭔가 잘못 말하면 고쳐줘야 할지, 내가 통역사로서 잘못 말한걸 나중에 깨달으면 어떻게 수습할지. 통역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지면 어떡할지.


그래서 망하지 않을 궁리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거기다 7년 간 나름 치열한 현장만을 골라다니며 그 궁리를 토대로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자리들이 많았는데, 트랙 레코드가 쌓이며 현장의 작은 고민들이 모여 큰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통역은 이렇게 어려울까,' 혹은 '어떻게 하면 잘하는 통역사가 될 수 있을까' 묻기 시작했고, 정말 생존을 위한 저만의 ‘야매’ 해답을 계속 찾았습니다.


Interpreters are pros at understanding

통역이 어려운 이유는 풀어야 하는 퍼즐이 비단 언어의 장벽이 아니라 사람 간 소통이라는 더 큰 퍼즐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주관적 표현에 의존해 전달받는 것이 사람 간 소통인데, 그 생각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중간에 오해와 편견 등 생각의 전달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결혼과 연애, 정치외교, 비즈니스 협상, 직장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핵심 난관으로 꼽습니다.


그럼 잘하는 통역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자명합니다. 소통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면 됩니다. 그래서 제게 통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이해전문가'라고 답할 것입니다. 흔히 언어전문가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통역 업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입장권일 뿐, 통역사의 진짜 역량은 오해와 편견 없이, 그리고 안정적이고 입체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의도와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언어 솔루션이 아니라 사람 간 소통 솔루션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통역을 써보거나 해보면 언어만 잘해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으니까요. 저도 공군통역장교 시험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연습 삼아 통역을 할 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역사 입장에서 클라이언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다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답은 간단하니 당연히 그 이해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통역의 현장에서 소통과 이해는 무슨 의미이고, 그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많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큰 고민 아래로 앞서 현장에서 겪은 세세한 고민들도 다 정리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욕을 했던, 농담을 했던 일단 그 핵심 의도를 알면 실마리가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이쯤에서 한 번 제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과 공유하고자 글을 시작했습니다. 통역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제겐 어려운데 그 어려움의 핵심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서 통역을 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해답에서 얻을 수 있는 '소통 이해력 개발'에 대한 인사이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하튼 업계관계자나 통역 준비생, 혹은 통역이나 소통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인사이트와 흥미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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