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계숙 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가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 작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오길, 현대분류학에선 더 이상 물고기를 하나의 분류군으로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책에서도 간략한 설명이 나와있긴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물고기라는 게 없다면 내 눈에 빤히 보이는 저 지느러미 달린 생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애써 공부할 정도는 아닌 뜨뜻미지근한 궁금증을 간직한 채 잊고 지내다가 룰루 밀러가 책의 주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자연에 이름 붙이기'가 한국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홀린 듯이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은 분류학의 발전과정을 담고 있다. 린나이우스부터 물고기의 죽음까지, 분류학이 300여 년간 어떤 여정을 겪어왔는지 무겁지 않은 문장으로 설명해 낸다. 한 학문의 발전사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현대 분류학의 예시를 보여주어(물고기나 얼룩말의 죽음) 독자로 하여금 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한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면 물고기가 왜 죽게 되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책의 프롤로그가 지금껏 읽었던 그 어떤 책들의 프롤로그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프롤로그에서 '움벨트(umwelt)'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는데, 움벨트란 '환경'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세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그 세상을 해석하는 데는 '인간'이라는 종의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우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은 곤충들에게 박쥐는 공포의 존재이다. 때문에 곤충들은 박쥐를 의식하여 행동거지를 달리하고 방어 수단의 진화까지 일어난다. 하지만 큰 몸집의 인간에겐 흔하디 흔한 날짐승일 뿐 박쥐가 인간의 생활양식 변화를 가져오진 않는다. 이처럼 같은 요소를 두고 곤충이 느끼는 것과 인간이 느끼는 것이 다르다. 개가 보는 세상과 고양이가 보는 세상이 다르듯, 인간 또한 인간만이 보는 세상이 존재한다. 우린 이 세계를 객관적이라 인식하지만, 사실 우리 머릿속의 세계는 감각기관을 통해 '솎아진' 정보로 구성된 인간만의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러한 점에서 움벨트는 '객관적 환경'이 아닌 '주관적으로 지각된 세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움벨트가 분류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것일까? 인류가 움벨트를 통해 주변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인류에게 분류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인류가 가진 움벨트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위협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진화했고, 그런 인류에게 '얘는 물고기, 얘는 나무, 얘는 고기...' 하며 구분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움벨트는 우리 주변의 자연을 구분하는데 강력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항해기술의 발달로 점점 다양한 동식물들이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분류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때, 누구보다 첨예한 움벨트를 가진 린나이우스가 전통분류학을 정립하였다. 그의 움벨트로 분류한 동식물들은 너무나도 타당해 보였다. 그가 분류한 어류는 누가 봐도 어류 같았고, 포유류는 포유류 같았다. 동식물을 분류하는데 움벨트 그 이상의 것은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책에선 인류가 가진 움벨트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재밌는 실험이 나온다. 위 표는 물고기 이름과 새 이름을 후암비사어로 한쌍씩 적은 것인데, 인간의 움벨트는 어느 쪽이 새 이름인지 '꽤 잘'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후암비사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이는 어느 지역, 어느 문화권이든 인류라면 본능적으로 새와 물고기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균 정답률은 58%. 가볍게 해 봤는데 다 맞춰서 정말 놀랐다.
하지만 움벨트를 분류학의 도구로 쓰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동식물들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포식자의 감각기관을 이용한다. 어떤 파리는 벌처럼 보이기도 하며, 따개비는 언뜻 조개처럼 보인다. '알고 보니 어패류가 아니고 갑각류더라.'라는 사례가 쌓일수록 움벨트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갔다. 또한, 움벨트는 주관적이어서, 개개인마다 느끼는 움벨트가 달라 종 분류에 대한 합의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해 밝혀진 생물의 가변성은 분류학의 가장 기본인 '종'에 대한 정의도 어렵게 만들었다. 분류학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움벨트를 기반으로 생물 분류를 주장했지만, 구심점이 없어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분류학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분류법이 주관적인 움벨트에 의존한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숫자에만 의존하는 수리분류학, 생물의 분자를 분석하는 분자분류학이 탄생하게 된다. 화룡점정은 분기학이었다. 수리분류학, 분자분류학으로 인해 움벨트와 서서히 멀어지던 분류학은 분기학의 등장으로 움벨트를 철저하게 버리게 되었다.
분기학의 등장으로 생물에 대한 관찰과 분류는 철저하게 전문가의 영역으로 변해버렸다. 분류는 DNA분석과 해부를 통해 연구실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일반인은 상식과 유리된 전문가들의 분류법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자연에 대한 관심마저 멀어지게 되었다. 분류학은 움벨트를 버리면서 진정한 과학으로 발돋움했고, 그 과정에서 물고기와 얼룩말, 나방 등이 죽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구분하는 물고기는 분기학적으로는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접한 순간 일반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니 맞겠지'하고 자연을 과학자들에게 송두리째 넘겨버리게 된다. 골치 아픈 과학적 분석을 공부하느니 모르는 채 사는 게 나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움벨트를 동식물을 분류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브랜드의 로고와 상품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한다. 자연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시작된 분류학은, 움벨트를 버림으로써 일반인으로부터 자연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물고기를 버릴 필요는 없다'라고 조언한다. 분기학은 과학자의 언어일 뿐, 과학자는 과학자의 언어로, 일반인은 일반인의 언어로 자연을 분류하면 된다는 것이다. 북두칠성을 보고 누군가는 국자로, 또 누군가는 곰으로 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곳에 북두칠성이 있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을 '인지'하는 것이다. 집 앞 가로수는 어떤 나무인지, 매일 아침 울어대는 저 새는 무슨 종인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지만 관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보인다. 자연을 구분하던 우리 인류의 움벨트가 지금은 상품들을 구별하는 데에 주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훈련을 통해 다시 그 자리를 자연으로 채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몇 년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새덕후 채널의 영상이 올라와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영상 퀄리티에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영상들도 보았다. 우리 주변에 그렇게 다양하고 알록달록한 새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새를 사랑하고, 새를 관찰하며 희열을 느끼고, 새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을 얻는 것. 그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도 깊은 관심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새 한 마리를 찍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그 추운 날씨에 수시간씩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순수한 열정에 감탄이 나온다.
새덕후 채널을 보고 시작하고 난 후,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딱따구리를 보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딱따구리였다. 동네 뒷산이었는데 숨는 기색도 없이 대놓고 나무에 붙어있어 신기했다. 이걸 그동안 왜 못 봤던 건지.
작가의 말대로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분류능력을 주로 상품을 구분하는 데 사용한다. 300년 전 사람들이 수십 종의 나비와 식물을 분류해 낼 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그 자리는 상품 브랜드로 대체되었다. 그 자리를 자연에게 조금만 양보해 보는 건 어떨까?
여담으로, 초기 ai가 그림을 잘 식별하지 못했던 이유를 움벨트와 연관 지어 추측할 수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간과 달리 ai는 0과 1로 구성된 데이터를 받게 된다. 즉, 인간의 움벨트는 이미 치와와와 머핀을 구분하기에 최적화되어있고, ai의 움벨트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물론 지금의 ai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새 이름 정답은 AABB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