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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쁜 토끼 Jan 07.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

23.01.07


"가슴을 울리는 사나이들의 뜨거움, 을 짜게 식히는 늘어지는 신파"



다 아는 장면이지만 벅차오른다. 다 아는 장면이라 벅차오르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송태섭의 시점에서 다시 본 슬램덩크는 강백호의 시점에서 본 원작보다 훨씬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스포츠맨들의 열정과 노력을 보여준다. 다 보고 나니 강백호의 천재성과 익살스러움 보다는 송태섭의 진중함과 노력하는 모습에 강백호를 얹는 것이 30여 권 정도 되는 만화책에서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 주인공들의 피와 땀의 서사를 2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해 확실히 더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송태섭의 어린 시절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굉장히 담백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진행되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사건을 떠나서 분위기 만으로 마음이 동요하게 된다. 원작에선 볼 수 없었던 송태섭만의 서사를 보여주면서 비로소 북산 5인 각각의 매력적인 스토리가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산왕과의 경기를 진행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플래시백과 마치 '여기서 우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듯한 신파적인 장면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124분의 러닝타임이 차라리 플래시백을 줄이고 90분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회상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다 하다 정우성의 플래시백까지 나올 때는 몸이 베베 꼬였다. 오히려 그런 눈물을 강요하는 플래시백 장면보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초반 부분과 극적인 승부가 진행되는 후반 5분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시간에 쫓겨 정대만의 서사를 원작과 달리 살짝 비틀었다는 것이다. 북산 5인 중 정대만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 때 상실감이 꽤 컸다. 상실감이 큰 만큼 채치수와 선배 간의 이야기를 다룬 플래시백이나 정우성의 무의미해 보이는 플래시백이 더 미워진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분명하지만 한참 잘 진행되는 이야기에 '저도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하고 눈치 없이 끼어드는 녀석이 곱게 보일리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중간중간 찬물을 계속 들이 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24점의 점수 차를 점점 좁혀나가기 시작할 때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들썩하며 목놓아 북산을 응원하고 싶었다. 싱어롱관처럼 다 같이 북산을 응원하면서 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후반 시퀀스의 그 고요함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어쩌면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렇게 뜨거울 걸 알고 억지로 찬물을 끼얹은 게 아닐까.


만화 슬램덩크는 본지 십수 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명장면 명대사가 생생히 기억날 만큼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원작의 완벽함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잘 끼워 넣었다. 원작의 내용을 너무 압축해서 보여주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무색하게 바로 산왕전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았고, 원작의 장면들을 최대한 멋지게 표현해 낸 것도 좋았다. 단지 잘 만든 요리에 실수로 넣은 신파라는 식재료가 뒷맛을 마냥 개운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게 사소한 흠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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