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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Nov 08. 2023

나도 이제는 워킹맘이 되고싶다.

 또 탈락이다.

제발 서류전형 만이라도 통과해서 면접 문턱까지만 가게 해주십사 기도했건만, 또 서류 탈락이다.

“ 그냥 써 봤다는데에 의의를 두라고. 그리고 그다음은 자기 손을 떠난건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서류를 넣어놓고 안되면 어떡하지 하며 내내 걱정하고 기대하는 나에게 남편이 위로라고 한 소리다.

안다고~아는데  마음이 그게 안되네~”


<지원자의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지원한 회사의 답메일에 적힌 글을 보고 있자니 내 우수한 역량을 서류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싶은데, 거 참 면접의 문턱에 다가가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탈락의 경험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것은 도통 아무렇지않게 넘겨지지 않는다. 두번째 탈락도 여전히 씁쓸하다. 나는 이제 회사나 조직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 엄마. 엄마는 꿈이 뭐에요? 앞으로 뭐를 이루고 싶다든지, 하고 싶은거라든지..”


 큰 아들의 질문이 시발점이었다. 저녁먹다말고 여느때처럼 말갛게 나를 바라보며 아무렇지않게 툭 저런 말을 내뱉았다. 이 녀석이 잠잠하던 내 자아실현 욕구의 불꽃에 불쏘시개를 던졌다.

“ 엄마도 일하고 싶어. 돈 벌고 싶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적나라하게 속내를 내비쳤다.


“ 아빠가 돈 버는데 ..엄마가 왜 돈 벌고 싶어요?”

내 말에 옆에서 듣고있던 둘째 딸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대꾸한다.

“ 그래도 엄마도 엄마 힘으로 돈 벌고 싶어. 얼마가 안되더라도..나가서 슈퍼 캐셔라도 하고 싶다.”


“ 흠. 엄마 해 보세요. 아직 반 백살도 아니신데요. 돈 버는게 꿈이라니 이상하긴 한데, 뭐 하면 되죠.”

 큰 아들이 뜬금없이 질문을 던져놓고 되려 나를 격려하며 그 날 대화는 그렇게  끝났더랬다.


그 뒤로 나는 한인회보의 구직란도 찾아보고, 주위 지인들에게 취직하고 싶다는 의사도 널리 알렸다. 처음에는 이 좁은 밀라노 한인사회에서, 가정주부로 오래 지내다가 갑자기 일자리 구한다고 하면 이런저런 말이 돌지 않을까 지레 걱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지싶다. 서류도 통과하지 못하는 마당에 누가 무슨 말이 돌겠는가.



 

 아이 셋 낳고 이제 다시 사회의 일꾼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 그게 참 마음대로 안되니 괜히 내가 이러려고 애 셋 낳았나 싶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만약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면, 만약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하다못해 학습지 선생님이라도 했을텐데.

아니면 공부방이라도 차렸을텐데…이런 만약의 생각들이 점점 끝없이 확장해지려는 찰나 번뜩 정신을 차렸다.

 삶에 만약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쓸데없는 잡념으로 나 자신을 계속 억울함의 감정 속에 밀어 넣고 있지 않는가.


일렁거리던 감정을 식혀놓으니 그제서야 나 자신도 똑바로 마주보게 된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5년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니, 월급통장에 꽂히는 돈을 보며 꾸역꾸역 버텨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쨌든 일하고 싶긴하다. 어쩌면, 방향을 좀 바꾸는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꼭 취직이 아니어도 일 할 수 있는 경로는 있을테니까. 이제는 그 경로를 탐색해볼 생각이다. 결국 다시 이태리어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일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이태리어를 어느정도 해야 가능성이 높아지는 걸테지. 그렇게 오늘도 깨달음을 얻고 다시 이태리어에 정진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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