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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Nov 12. 2023

김밥 열 줄을 쌌습니다.

 막내가 간곡하게 부탁하기를

“ 엄마, 이번 harvest day에는 꼭 김밥을 가지고 가고싶어요. 친구들도 선생님도 김밥이 꼭 먹고 싶대요”


아, 그래? 그럼 김밥 싸 줘야지.


 막내 반 아이들은 18명이고 세 반이 있으니 50명 넘는 아이들이 한 입씩 맛보려면 넉넉하게 열 줄은 싸야겠다.

 다음 날 다섯시에 일어나 밥을 먼저 앉히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본다. 당근을 채썰고, 시금치를 데치고 계란 지단을 부치고, 불고기 양념을 끼얹은 다진 소고기를 볶고 통단무지도 크기맞춰 가지런히 썰어둔다. 치익—-하고 밥솥의 김이 빠지고 잠시 후 뽀얗게 흰 밥이 완성되었다. 한 김 식히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적당히 밥에 간을 한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신경쓰며 김밥을 열 줄 싼다. 그 중에 베지테리언을 생각해서 세 줄은 잊지않고 고기를 빼고 대신 아보카도를 넣어 싼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김밥 열 줄 싸는 것은 속도가 빨리 나지 않아 애들 등교시간에 겨우 맞춰 끝냈다.

 부모도 참석하기를 요망한다고 했으니 나도 부지런히 씻고 학교로 출발한다. 국제학교이니 이런 행사가 있으면 여러 나라의 엄마들이 나름대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준비하려고 애쓴다. 아무래도  이탈리아에 있는 영국계학교이다 보니 아시아 국가가 소수일 수 밖에 없는데, 학교 행사에서만큼은 자식들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게 된다.


“ 이렇게 잔뜩 싸가는데 별로 안 먹으면 어떡하지?”

내 걱정어린 소리에 딸은,

“ 엄마 김밥은 불패에요 불패”


 교실에 도착해보니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지고 온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리느라 바쁘시다. 막내 손에 들려 보낸 김밥은 락앤락 뚜껑이 닫힌 그대로 덩그러니 테이블 구석에 올려 있었다. 눈치없는 아들 같으니라고…

내가 뚜껑을 열고 다양한 음식들 사이에 소심하게 가져다 놓았다. 참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좀 적게 바를걸 그랬나…너무 한국 그 자체인건가

빵들의 향연 속에 홀로 알록달록 자태를 뽐내는 김밥


 테이블 세팅이 끝나고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우르르 김밥앞으로 달려간다. 스시 너무 맛있다는 여자 아이들에게 이건 스시가 아니고 김밥이라고 말해 주었다. 일본 스시랑 비슷하지만 한국 김밥은 여러 익힌 야채와 고기나 다른 재료를  넣어서 만드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남으면 도로 싸가야 하는건가 하고 고민했던  무색하게 금세 없어졌다.




 예전에는 스시가 아닌 김밥이라고 고쳐 말해줘도 스시라고 말하더니 이제는 김밥이라고 익히려는 모습이 반가웠다.  애들이 꼬꼬마 시절이던 때만 해도 검은 김이 낯설어 손도 대지 않던 유럽인들이 이제는 k-food라고 친숙해하는 모습에 되려 내가 신기하다. 사람들과 인사나누는 자리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알면 자동적으로 화제는 한국음식과 한국 드라마가 된다. 해외에 살게 되니 한국에서 살았을 때보다 더욱  국가의 위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느낀다.


 음식은 마치 수리수리 마수리 ~ 마법같다. 그렇게나 외국엄마들에게 입 열고 안면 트이는게 어려웠는데 이 날 행사에 김밥을 싸가니 인사하고 아는체 하기가 덜 어색해졌다. 항상 비주류 아시아인이라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이 날, 나는 김밥 덕에 호주에서  엄마와 안면을 텄고, 프랑스 출신의 도도한 반장엄마의 찬사도 들었다. 너서리 때부터 보긴 했지만  한마디 섞지않던 이탈리아 엄마들도 연신 buono라며 나에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김밥 덕분에 나는 요리 잘하는 한국엄마가 되었고 막내는 이런 김밥을 원할  먹을  있는 부러운 친구가 되었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김밥을 자주 쌀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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