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양갱을 좋아해
오랜만에 들여다 본 인스타그램 속에는 온통 bgm이 달디 단 밤양갱~~
이런 노래가 휩쓸고 있더라.
달디 단 초콜렛도 아니요 아이스크림도 아니요 밤양갱이라니.
영어가사도 아닌데 라임을 맞추는 것 처럼 입에 찰싹 붙는 가삿말이다.
밤.양.갱
처음 그냥 노래만 들었을 때에는 밤양갱이라는 노랫말 때문에 광고 cm송이라고 생각했다.
각설하고, 광고음악도 아니었고, 이 노래는 들으면 마치 어디서 그림이나 사진으로 본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의 달콤함이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밤양갱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게 참신했나보다. 게다가 노랫말이 귓 속에 쏙쏙쏙 잘 들어오니 하루종일 입에서 흥얼거리고 있다.
가사 그대로 사랑했던 남녀가 이제는 헤어지는 그런 장면…
달디단 초콜렛도 아니고,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밤양갱이래.
남편은 양갱을 무척 좋아한다.
결혼 초, 밀라노로 건너오고 나서 어머님께서 우리 신혼 짐을 부쳐주셨는데 양갱이 한 박스 들어 있었다.
“ 어머니 왠 양갱을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어머니 왈,
“ 제 오빠가 양갱 좋아한다고 선영이가 사서 넣었어”
나는 그때 두 가지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요즘도 양갱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내 남편인데 또 엄청 좋아한다는 거.
하지만, 이후로 계속 해외살이 하면서 정신없이 애들 키우다 보니 남편이 양갱을 좋아하는건 까맣게 잊었다.
그러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애들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항공편으로 보내주셨는데 양갱 한 묶음이 있었다.
"엄마 왠 양갱을 한 묶음이나 보내셨어요?"
“황서방 양갱 좋아하잖아. 심심할 때 하나씩 줘라”
아....
그제서야 남편이 양갱을 좋아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식사를 모두 물리고 치운 뒤 남편에게 슬며시 양갱 하나 건네 주었다.
"어? 양갱이네, 오랜만에 먹어보는구먼, 왠일로 양갱을 사왔어?"
"어...제주도 엄마가 보내주셨어. 자기 먹으라고. 자기 양갱 좋아하다면서"
남편은 한참 양갱을 쳐다보더니, 은색 속포장지를 벗기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 울 엄마는 이제 내가 양갱 좋아하는 것도 기억 못하시는데 , 그래도 제주도 엄마가 나 먹으라고 양갱 보내주시고…”
그 날 나는 결혼 십칠 년만에 남편의 울음을 마주했다. 결혼이후 내내 해외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치매로 급격하게 노화하신 어머님이 생각났나보다. 어머님은 코로나 기간에 갑자기 치매가 발현되었는데 최근에 급격하게 심각해지셨다. 환영, 환청도 있고 감정기복도 심해지신 상태인데 떨어져 있는 둘째 아들 걱정이 한 가득이라고 하신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 단 밤양갱
아마 나는 이 노래가 들릴 때마다 그날 밤 목놓아 울던 남편이 계속 떠올리겠지. 그리고 남편은 아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어머님을 떠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