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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Apr 03. 2024

어쩌다 유럽

이탈리아 베르가모

수험생은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하고 있으므로 부활절 연휴이지만, 여행은 진작에 접어두었다. 사실 큰 애가 11학년에 올라온 작년 9월부터 비행기는 커녕 가까운 근교조차 온 가족이 나가보지 못했다.

큰 애가 막둥이 나이였을 때에는 휴일이면 어디든 나가기 바빴는데 막둥이만 불쌍하다. 형아 누나 한참 공부하는 시기라 내내 집콕이다.

게다가 일주일째 내리는 비가 곤욕스럽다. 원래 3월 말에 이렇게 비가 내렸던가. 비가 내려도 밤에만 부슬부슬 내리고 낮에는 어김없이 개었는데 이상기후가 확실하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어딘가 꼭 사단이 나야만 끝날 것 같다.


하루종일 유튜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막둥이를 보니 이것 아니다 싶다. 다행히 퍼붓던 비도 그쳤다.

자 자 그럼 막둥이만 데리고 가까운 데로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외출은 무계획, 즉흥적이 되었다.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은 변수가 많다는 것을 오랜 유럽살이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제법 크고 나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일은 적어졌지만, 이제는 닥치는대로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구글 맵을 열고 한 시간 내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본다. 골랐다.

베르가모.

밀라노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베르가모로 다녀오기로한다. 도시국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탈리아의 이름난도시들은 각자의 역사와 문화가 제법 잘 유지되어 있다. 베르가모 역시 롬바르디아주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인만큼 이 곳도 제법 관광객이 많다.




베르가모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치타 알타와 대부분의 지역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치타 바싸로 나뉘어져 있다. 치타 알타 이름 자체가 Citta alta 높은 곳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언덕위에 있는 이 치타 알타가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모여있는 구시가이다. 여느 이탈리아 마을과 다를 바없이 구시가의 중심은 두오모이다. 예전 구글맵도 없고 스마트 폰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우리는 무조건 두오모를 제일 먼저 찾아다녔다. 왠만한 이탈리아 마을의 두오모는 바로 그 지역의 명소이자 중심지이기 때문이아.  두오모와 세례당, 종탑이 한 세트로 묶여있는 곳은 과거 그 도시가 제법 번성한 곳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곳 베르가모 역시 이 세트가 구시가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니 이 도시도 과거 한가닥 했던 곳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보통 베르가모는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치타 알타 지역을 둘러보는게 관광코스이지만, 오늘은 달라야 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 몇 번 둘러보기도 했고, 5학년과 고1짜리를 데리고 아이들 피셜, 어디서나 늘상 보는 성당을 굳이 여기에서도 꼭 볼 필요는 없다고 분명한 어조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나들이의 목적을 정해본다.


오늘 베르가모의 방문목적은 자연사 박물관 탐방이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르가모의 자연사 박물관은 치타 알타에 있네. 그렇다면 박물관을 보면서 슬쩍 구시가까지 한바퀴 돌면 되겠다 싶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오랜만의 외출이니 나는 여행 기분도 느끼고 싶으니까 구시가도 둘러봐야지.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이나 베를린, 바르셀로나의 Caixa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족은 제법 여러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밀라노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앞서 열거한 곳에 비하면 전시내용이 너무 초라해서 실망했었다. 두오모와 같은 건축물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관이 아니면 이런 박물관은 오히려 빈약한 이탈리아이다. 그래도 구글 4.5의 평점이니 믿어보기로 한다.


베르가모의 치타바싸는 밀라노와 달리 굉장히 깨끗하고 정돈되었다. 마치 바르셀로나에 와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탈리아에 이런 도시가 있단 말이야? 좁은 도로위에 일렬로 주차된 차, 트람길과 자전거 도로까지 혼재되어 있는 밀라노의 도로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웠다. 예전에도 이랬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튼 치타 알타 구시가 안에는 주차가 힘들것이므로 박물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주차장을 검색해본다. 다행히 멀지않은 곳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박물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5분정도 올라가니 치타알타와 치타바싸의 경계에 큰 성벽문이 있다. 과거에는 이곳을 지키는 누군가가 있었겠지. 제법 높은 곳이다. 현대의 건물이 모여있는 치타 바싸가 한참 아래쪽으로 보인다.

울쿵불쿵한 돌길을 걸어 들어가니 어떤 건물의 내정으로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박물관건물이었다. 안내표시를 따라가니 매표소 직원이 보인다. 어른 둘에 아이둘 6유로다. 유럽의 박물관치고도 많이 싸다.


입구에 커다란 매머드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모든 박물관의 입구에는 항상 이렇게 규모가 압도적인 모형을 배치해놓는다. 엄청 큰 티라노사우루스라든가, 런던의 푸른고래라든가… 인간이 영장의 만물이라고 하지만 인란 이외에 자연 속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것들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기 위함인걸까? 입구에서 받은 안내서의 동선대로 천천히 걸어가보며 관찰하기 시작한다.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어류 등 종별로 박제된 동물들이 분류되어 상세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같이 적혀있지만 사실 그런 설명은 중요하지 않다. 박제되어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신기하니까.

눈에 익숙한 종부터 이름조차 생소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하다. 게다가 동물 털들을 만져볼 후 있게 옷감샘플처럼 따로 진열되어있다. 하나하나 만져보며 나름 어떤 동물의 털인니 추측해보킄 재미가 있다. 멧돼지 털은 마치 소나무가시처럼 딱딱하고 뻑뻑팼다. 토끼 털은 정말 너무 보드라워 내내 만지고 싶을 정도였다. 이외에도 양이나 소, 고슴도치등 도시인들은 만져보기 힘든 것들이라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털이없는 어류나 파충류등의피부도 만져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여러모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돌과 화석, 광물이 진열되어있다. 돌구경하기 좋아하는 막둥이가 신났다. 색깔과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귀엽다. 종류별로 모든 돌을 다 가지고 싶단다.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에서 한무더기 돌 기념품을 사줬던게 생각났나보다. 다행히 여기는 기념품가게가  없었다. 또 하나 막둥이가 흥미로워 했던 것은 개미굴이었다. 개미가 땅 속에 어떤 형태로 개미집을 만들었는지, 땅에 보이는 하나의 구멍이 땅속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길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짐짓 놀래는 눈치였다. 책으로만 알게 된 지식을 이렇게나마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외출은 성공이라 하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가득 차트렁크에 짐을 싣고 돌길을 유모차를 끌면서 , 그런 생각을 했다. 얼른 커라 얘들아! 그럼 여유롭게 헛 짓거리 안하면서 우아하게 여행다닐 수 있을테니까. 이런 말을 할 때면 엄마가 함마디 하셨다.

야 지금이니까 애들 데리고 너희 가고 싶은 데 다니는거야. 그게 또 재미고. 좀 더 커봐라. 같이 다니간디? 공부한다고 코빼기도 안비칠걸. 그러다가 대학가면 그냥 그걸로 끝이야. 애들 애기때 고생하며 다녔던 거 그 때가 젤로 재밌을 때였건거야!!!!


엄마 말이 이렇게 감쪽같이 맞을 줄이야.

베르가모의 자연사박물관을 여유롭게 보고 왔으니 이걸로 나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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