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 동시집 『재미있는 병』(초록달팽이, 2024)을 읽고
조기호 작가는 1984년 《광주일보》와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2015년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했고, 2016년 올해의 좋은 동시집에 『‘반쪽’이라는 말』이 선정되었다. 동시집 『숨은 그림 찾기』 『‘반쪽’이라는 말』 『뻥 뚫어 주고 싶다』 시집 『이런 사랑』을 펴냈다. - 작가소개에서
“따뜻한 동시를 쓰고 싶었다”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날아온 따뜻한 동시집 『재미있는 병』은 따뜻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따뜻함을 담고 있는 동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들려주는 따뜻함을 몇 편만 살짝 맛보기로 한다.
웃으며
하늘을 보면
구름도 솜사탕이 됩니다
웃으며
바다를 보면
파도도 춤을 춥니다
웃으며
마주 보면
눈물도 반짝이는 별이 됩니다
― 「웃으며 마주보기」 전문
웃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더 좋은 것은 웃음으로 인해 그렇지 않은 것들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바꿔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서 아름다운 상상을 하게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늘 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다.
별처럼
반짝거리고 싶다고?
그래,
밤하늘이 없다면
별이 뜰 수 없겠지
지금
니 마음이
밤하늘처럼
어둡고 깜깜하다면
이제
곧 별이 뜰 시간이 되었다는 거니까
― 「니 마음이 어둡고 깜깜할 때」 전문
슬프거나 외로울 때 ‘이제 곧 별이 뜰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아픈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병을 얻게 된 사람을 안다.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이제 어둡고 캄캄한 상황이 오면, 너무 슬퍼하지 말고, 금방 떠오를 별을 기다려보면 어떨까. 별이 뜰 시간을 기다리는 설렘이 느껴진다. 이토록 반짝이는 생각을 해낸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끝’이라는 말은 슬퍼요
다시 손 내밀어줄 꿈이 없으니까요
‘혼자’라는 말은 쓸쓸해요
함께 웃어줄 친구가 없으니까요
함께
웃어주고
다시
손을 내밀어주는 말 하나
갖고 싶어요
따뜻하고
그윽해서
만나면 서로 보듬고 싶어지는
‘응’이라는 말
― 「‘응’이라는 말」 전문
가만히 ‘응’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보면, 위와 아래에서 보듬고 있는 따뜻한 글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아이가, 선생님과 학생이, 형과 동생이… 세대와 성별,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서로 보듬어 준다는 말 역시 따뜻한 시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비가 오고 있어요
집으로 가는 길이 무척 멀어요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요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여요
비에 젖은 어깨가 무거워 보이고요
가로등도 무척 추워 보여요
누군가가 우산을 펼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내가 우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꿈」 전문
내가 비에 젖더라도 우산이 되어서 누군가가 젖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희생보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세상에서 나를 희생하려는 마음은 정말 따뜻한 마음이다. 시속 화자는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아닌, 그저 길에서 만난 타인을 위해 우산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더 숭고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그야말로 시인은 따뜻한 마음의 끝판왕이다.
나무가 될 거야
한번 뿌리를 내리면
다시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 나무가 될 거야
그러나
그냥 서 있지는 않을 거야
비스듬히
그림자를 드리워 놓고
날마다 누군가를 기다릴 거야
― 「나무 생각」 전문
든든한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마음은 참 고마운 생각이다. 게다가 그림자까지 만들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마음은 또 얼마나 따뜻한 생각인가. 역시나 시인은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바라고, 소중한 것을 나누고픈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어주고자 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달빛 아래
자꾸만 꾸벅거리는 바늘코를
호호 깨우며
한 땀 한 땀
긴 밤을 꿰어가던 할머니
웃는다,
눈길에서 풀려난
아지랑이처럼
포근포근
목을 감싸 안아준다
―「할머니의 목도리」 전문
이런 멋진 은유는 뭐지? 여기에 이르러 생각났다. 조기호 작가가 『이런 사랑』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라는 것을. 동시에 은유적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줄 몰랐다. 할머니의 목도리가 또 시인의 따뜻한 감성을 자극해 이 멋진 동시가 탄생된 것은 아닐지. 몸과 마음을 감싸주는 「할머니의 목도리」 정말 최고다.
“시는 사랑이어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또 따뜻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글을 통해 작가가 나누고자 하는 것들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내 마음에도 벌써, 따뜻함 전해 온다.
『재미있는 병』은 동화 작가, 수필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배순아 선생님의 예쁜 그림과 어우러지면서 “따뜻함”이 물씬 풍기는 동시집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동시집으로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 조기호 시인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