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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Mar 17. 2023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에 선 시간여행자

이베리아 반도 국경 도시 카세레스(Cáceres)

 당신의 2023년 첫 여행지는 어디인가? 나는 작년 12월 31일 마드리드를 떠나 포르투갈 리스본과 스페인 남부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건너갈 때, 많은 이들이 시간 절약과 체력 비축을 위해 저가항공을 이용하지만 나는 '이왕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부까지 가는 겸, 새로운 소도시들을 정복해 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에 자가용을 이용한 육로 여행을 택했다.


 2020년에도 자가용을 이용해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 남부까지 이동한 적이 있었다. 이 때는 새벽같이 출발해 스페인의 바다호스(Badajoz), 포르투갈의 에보라(Évora)까지 거쳤더랬다. 이베리아 반도 내 두 국가의 국경에 인접한 도시들은 다소 조용하면서 평화롭고, 또 주요 관광도시와는 다른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를 안고 낯선 국경도시 카세레스(Cáceres)에 들러 보기로 결정했다.


 마드리드에서 카세레스까지는 차로 약 3시간, 카세레스에서 리스본까지는 약 3시간 반이 소요된다. 하지만 중간중간 쉬었다 가는 시간, 그리고 주요 시간까지 고려하는 걸 잊지 말 것. 참고로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육로 이동할 시에는 그늘이 거의 없고, 사시사철 햇빛이 강해 쉽게 지칠 수 있다. 그러니 꼭 휴게소 및 중간 경유지를 한두 곳 설정하고 출발하는 편이 좋다.


 카세레스는 규모가 작지만, 구시가지에 볼거리가 가득해 반나절 또는 하루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기에 딱 좋은 중세풍 소도시이다. 그러면 띵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카세레스는 어땠을지 함께 떠나 보자.



1. 스페인식 아침식사
Zeri's Specialty Coffee

 해뜨기 전 마드리드를 떠나 카세레스에 도착하니 허기가 심해, 아름다운 풍경은 뒷전이고 먹거리를 찾게 되더라.

 구글맵을 통해 이른 시간에도 열려 있는 식당들을 탐색해 보니 Zeri's Specialty Coffee라는 브런치 카페의 평점이 매우 높았다. 아마 카세레스에서 유일한 '힙플레이스'이자 동네 주민들의 참새방앗간인 듯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주말 일찍 일어나 동네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식사를 즐긴다. 가장 사랑받는 메뉴는 진하게 녹인 초콜릿에 츄로를 담가 먹는 츄로 꼰 초콜라떼(Churro con Chocolate), 바삭하게 구운 빵 위에 간 토마토와 올리브유, 소금을 뿌린 또스따다 꼰 또마떼(Tostada con Tomate) 등이다. 오늘은 하몽 이베리코를 올린 또스따다 꼰 또마떼와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숙성이 잘 된 하몽 이베리코는 짠맛보다 감칠맛이 강하고, 지방이 입 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매장에서 직접 구운 듯한 사워도우에 두껍게 바른 간 토마토가 신선함을 더해 주었고, 또 토마토와 하몽 사이에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가 맛을 이어주는 중간 다리가 되어주니, 알차면서도 속에 부담이 없는 최고의 스페인식 아침식사를 만끽할 수 있었다.



2. 카세레스 구시가지 산책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카세레스 구시가지로 이동해 본다. 나는 성 프란시스코 다리를 지나 Fuente Nueva 골목을 오르는 경로를 택했다.


 생각보다 경사가 있어 숨이 찼지만, 흰 벽에 붉은 기와가 얹힌 이층 집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되더라.


 경사로를 오르고 나니,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독특하게도 카세레스 시내에는 포르투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른 타일로 장식된 건물들이 꽤나 있다. 이렇듯 건물 외관에 타일을 붙이는 건축 스타일은 스페인에서도 '아술레호(Azulejo)'라는 이름으로 종종 만날 수 있다.


 1926년 지어진 대극장과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맞닿아 있는 카세레스 구시가지.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골목들이 대체로 좁아 그늘지고 다소 추운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활기 도는 얼굴로 연말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 기운이 솟았다.



3. 마요르 광장에서 맥주 한 잔

 이제 카세레스의 중심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돌로 쌓은 성곽이 금빛 별 모형과 잘 어우러져 아주 멋스러운 가운데, 이른 시간임에도 관광객과 동네 주민들로 북적거리는 광장.


 호텔, 식당, 카페, 관광 안내소 등이 고대 로마 유적 부하코 탑(Torre de Bujaco)을 마주하고 있는 마요르 광장은 주민들에게는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관광객들에게는 중세로의 타임워프가 시작되는 출발지로서 기능한다.


 스페인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오맥(오전 맥주)이 아닐까? 이른 시간임에도 노천 바에 앉아 아침 햇살을 즐기며 맥주 또는 와인을 마시는 현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따끈한 12월의 볕과 마요르 광장 뷰를 200% 즐기기 위해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고 생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음료를 한 잔만 주문해도 마늘 마요네즈에 버무린 감자 샐러드를 얹어 주는 인심 덕에 카세레스와 한 번 더 사랑에 빠지게 된다.



4. 옛 귀족들의 저택이 가득한 역사 지구

 맥주잔을 비우고, 부하코 성 사잇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카세레스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역사지구를 걷다 보면 투박하고도 정제된 느낌의 돌집들이 여럿 보인다.


 사베드라의 집(Casa de Saavedra), 아길라의 집(Casa de Águila), 산체스 파레데스의 집(Casa de los Sánches Paredes) 등 15세기경 스페인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에서 내로라하던 가문들의 저택들이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있다.


 아름다운 풍경의 향연 속,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산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 Javier)이었다. 여느 스페인 대도시의 성당들에 비해 가로로 좁고 투박한 형태가 특징인 이 성당은 18세기 중반에 지어졌다고 한다.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쌍탑 덕에 더욱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날 둘러본 장소들 외에도 마테오 광장, 산 파블로 수도원, 유대인 지구 등 볼거리가 가득한 도시 카세레스. 갈 길이 멀어 짧게만 머물렀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해 걸음걸음이 소중하고 즐거웠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육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국경 도시 한두 개를 골라 꼭 방문해 보았으면 한다. 카세레스처럼 예스러운 멋이 가득한 마을을 지나칠 수도 있고, 끝이 없는 초원과 양 떼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소도시에서 기대 이상의 풍경과 놀라운 순간을 마주하기를!





미식 여행 크리에이터 @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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