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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Jul 30. 2023

스페인 사라고사, '노잼도시'라고?

하지만 쉬이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그곳

 스페인에서, 특히 여름에 차를 이용해 국내여행을 다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낮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을 뚫고 달리다 보면 자동차마저 지쳐 에어컨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곤 하죠. 더군다나 영토가 큰 국가 특성상, 마드리드 또는 바르셀로나 근교까지도 이동에 두어 시간이 소요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자차로 이동할 경우 6시간 여가 소요됩니다. 때문에 햇살이 패악을 부리기 전 출발해,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서너 시에는 중간경유 도시를 하나 골라 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스페인 교통의 허브로 알려진 사라고사(Zaragoza)에서 타파스를 먹으며 휴식을 취해 보았어요. 


 사라고사는 왜 스페인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을까요? 지도를 열어 사라고사의 위치를 보세요.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빌바오, 발렌시아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툴루즈에서 모두 300km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스페인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이들이라면 필연적으로 한 번쯤은 지나치게 되는, 이른바 한국으로 치면 대전과 같은 위치에 있죠. 


 도착 전, 잠시 여행기들을 읽어보니 '노잼도시', '볼 게 없어 지루하다'는 평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로 대성당 외에는 크게 볼 게 없다는 평을 몇 차례 듣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라고사가 기억 속에 진하게 남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답니다. 


 사라고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에브로 강을 건너고 나면, 위엄이 느껴지는 필라 성모 대성당(Basílica de Nuestra Señora de Pilar)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붕의 독특한 모자이크가 뱀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이슬람 모스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웅장한 성당 자체도 도시의 멋을 더해주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성당을 배경 삼아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의 모습이었어요. 오랜 시간 자리를 보전해 온 유적과 공존하며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풍기는 멋과 여유로움을 아나요? 


 사라고사에 오기 전, 바르셀로나와 근교 소도시를 전전하며 '관광'을 했던 제게는 이 풍경이 더욱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관광객으로 가득 차 여유라고는 눈 씻고 볼 수 없는 스페인 주요 여행지들과 달리, 느린 음악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사라고사만의 시간이 저를 부드럽게 관통하는 듯했어요. 


 아쉽게도 성당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필라 성당에 들러 두 눈으로 멋진 광경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사라고사의 명물 타파스를 맛보러 떠나 볼게요. 


 사라고사는 미식 도시로 유명하죠. 사실 스페인 내에서 미식 도시라고 주장하지 않는 도시가 없지만요... 여하튼, 저렴한 가격에 독특한 타파스들을 맛볼 수 있다고 하여 바 골목 이곳저곳을 누벼 보았습니다. 


 먼저 방문한 식당의 이름은 La Republicana입니다. 벙커 같기도 하고, 또 동유럽 할머니의 오두막 같기도 한 독특한 정취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 타파스 바의 시그니쳐 메뉴는 봄바 레예나(Bomba Rellena)라는 감자 요리입니다. 감자 반죽에 매콤 달달하게 양념된 다짐육이 가득 차있습니다. 사워크림처럼 진득하고 새큼한 살사를 섞어 먹으니 맥주가 술술 넘어갑니다. 


 봄바 레예나 외에도 감자를 주재료로 한 타파스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조금만 먹어도 배가 아주 든든해졌습니다. 


 첫 번째 식당을 지나 발걸음을 향한 곳은 엘 뚜보(El Tubo)입니다. 엘 뚜보는 사라고사의 타파스 특구(?)라고 할 수 있죠. 좁은 골목들 사이에 타파스를 파는 바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식당 이곳저곳들 들여다보다 맘에 드는 곳을 골라 저렴한 메뉴를 한두 개씩 맛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타파스는 스페인 전역에서 맛볼 수 있기에, 다른 곳에는 없는 독특한 콘셉트의 바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중 크루아상 핀쵸를 파는 식당인 Casa Colá를 발견했습니다. 


 작은 빵 조각 위에 재료가 올라간 타파스를 핀쵸(Pincho)라고 합니다. 대개 바게트빵을 사용하지만, 이곳에서는 바작하고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 위에 짭짤하고 눅진한 재료를 올리니 더욱 완성도 높고 식감도 재미있더군요.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생맥주와 타파스를 즐긴 후, 마지막 행선지인 푸엔테 데 피에드라(Puente de Piedra)로 이동합니다. 푸엔테 데 피에드라를 직역하면 '돌다리', 좀 멋없게 느껴지죠? 


 무려 1440년에 완공되었다는 이 다리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산책 코스이자, 사라고사 시청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도시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쉽게도 갈 길이 먼 저는 노을을 보지 못했지만요. 다만 15세기 스페인 사람에 빙의(?)해 다리를 천천히 건너 보았습니다. 


 사라고사를 여행할 당시, 스페인 전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라고사를 따라 흐르는 에브로 강(Río Ebro) 역시 수위가 낮아져 있었죠. 그럼에도 도시에 싱그러운 멋을 더해 주는 강줄기와 담담한 분위기의 성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습니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발전보다는 공생을 꿈꾸는 스페인. 백 년 전 같은 자리에서 풍경을 감상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페인 소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관광 콘텐츠로서 아쉬운 부분들, 특히 현대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점들이 눈에 띄곤 합니다. 스페인 지자체들이라고 이런 부족함과 개선방안을 몰랐을까요? 다만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도시의 멋을 보존하며 과거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겠죠. 


 혹자에게는 천하제일 노잼도시인 사라고사, 하지만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부족함 없는 여행지입니다. 필라 성당과 타파스 골목에서 느린 오후를 보내고, 푸엔테 데 피에드라에서 일몰까지 눈과 마음에 담아 오기를 바라요! 


*더 많은 여행기는 띵시의 블로그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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