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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Aug 25. 2023

술이 술술, 스페인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술 

 스페인, 먹을 것도 많고 마실 것도 참 많네요. 와인, 맥주, 상그리아 모두 한껏 즐기셨겠죠? 신기하게도, 스페인의 술들은 주종을 막론하고 무덥고 건조한 이베리아 반도의 기후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집니다. 


 저 역시 '우나 쎄르베싸, 뽀르 빠보르(맥주 한 잔 주세요)'만을 외운 채 이 땅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한데, 식당에 갈 때면 매번 낯선 음료들이 현지인들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곧 스페인 여행을 떠날, 또는 여행에서 갓 돌아와 추억을 반추하고 계실 여러분을 위해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스페인 술 5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베르뭇(Vermut) 

 포트 와인이나 셰리주는 들어보셨어도, 베르뭇은 초면인 분들이 많을 거예요. 스페인식 주정강화와인인 베르뭇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스페인으로 건너오며 음용 방식 및 형태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소도시를 여행할 때면, 각 지역에서 채취한 약초를 넣고 발효시킨 베르뭇이 진열된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죠.


 스페인의 유명 실내시장에 가면, 생맥주 탭을 닮은 기계에서 콜라 비슷한 음료를 뽑아내는 가게들이 눈에 띕니다. 베르뭇 데 그리포(Vermut de grifo)는 이렇게 기계에서 따라내 즉석에서 즐기는 베르뭇을 뜻합니다. 바에 기대선 채 큼직한 얼음과 레몬조각을 넣은 베르뭇 잔을 천천히 흔들어 마시곤 합니다. 


 베르뭇은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향이 확 튀어 연말에 특히 잘 어울리는 술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재료를 넣고 숙성시켰느냐에 따라 콜라향, 생강향, 베리향 등 독특한 뉘앙스가 풍기죠. 식전주로 즐기면 입맛이 확 살아나지만, 도수가 꽤 높으니 식사가 시작되기 전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2. 시드라(Sidra)

 스페인 북부를 대표하는 사과 발효주, 시드라. 쿰쿰하고 시큼한 맛에 처음에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점차 그 향미에 빠져 자꾸만 찾게 돼요. 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둥둥 떠다니는 침전물이 눈에 보입니다. 정제가 덜 된 만큼, 인공적인 향이 배제된 진한 맛이 특징이죠.


 시드레리아(Sidrería, 시드라 전문 식당)에 방문하면, 운이 좋을 경우 까마레로가 곡예를 하듯 병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술을 따라주는 장면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문한 시드레리아들은 장사가 너무 잘 되어 바빠서인지, 대개 기계를 써 서빙하더군요. 탄산이 강한 발효주인 만큼, 톡 쏘는 맛을 살리기 위해 시드라를 따라주는 기계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아스투리아스, 빌바오 등 스페인 북부식 음식점에 갈 경우 시드라를 활용한 술안주 역시 맛볼 수 있습니다. 초리소 알라 시드라(시드라를 부어 익힌 소시지), 뽀요 아사도 알라 시드라(시드라를 발라 구운 닭) 등 상큼한 향이 돋보이는 북부식 음식들 역시 스페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안주랍니다!



3. 끌라라(Clara)

 스페인 '아재'들의 식탁에는 매끼 술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저 그 음료가 지닌 맛과 향, 그리고 그 순간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곁들일 뿐이죠. 이러한 문화에 맞추어, 대부분의 식당에서 쎄르베싸 쎄로 쎄로(무알콜 맥주) 또는 도수를 낮춘 맥주를 판매합니다.


 끌라라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들어맞는 맥주입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탄산음료는 까세라(Casera)입니다. 쉽게 말하면 향이 첨가되지 않은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인데요, 이를 맥주에 넣어 알코올을 희석시키되 탄산은 유지시킨 술이 바로 끌라라죠. 


 경우에 따라서는 까세라 대신 레모네이드 또는 오렌지즙을 첨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햇살을 가득 머금은 오렌지즙을 양껏 부은 끌라라가 '여름맛 맥주'의 대명사라고 생각해요. 알코올보다는 대화를 음미하며 술을 즐기고자 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함이 담긴 끌라라가 궁금하지 않나요?



4. 차콜리(Txakoli)

 스페인에서 3년간 거주한 저도, 올여름에야 빌바오 지역 토속 와인인 차콜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량이 극히 적어 빌바오 내수 소비율이 70%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는 화이트와인 차콜리는 높은 효모 함유율로 인한 콤콤한 향이 특징입니다. 사워도우를 연상시키는, 밀도 있는 새큼함이 혀에 남는 독특한 와인입니다. 잔에 담긴 차콜리의 색만 보아도 다른 화이트와인보다 훨씬 농밀해 보이지 않나요? 


 와인의 끈끈한 산미가 단백질을 착 잡아주는 역할을 해, 하몽과 치즈 등의 안주와도 완벽한 페어링을 이루었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 빌바오에 머무르는 동안 매 끼마다 차콜리를 곁들일 정도였죠. 


 한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스페인 타 지역에서 쉽게 찾기 힘든 와인이니만큼, 스페인 북부지방에 방문한다면 시내외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맛봐야 하는 전통주랍니다. 



5. 띤또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상그리아 마시러 왔다가 띤또 데 베라노에 빠지고 간다', 스페인에 놀러 온 지인들이 입을 모아 전한 말입니다(실화). 사진을 보시면 짐작 가능하시겠지만, 띤또 데 베라노는 와인에 레몬음료 또는 까세라를 섞고 레몬 피스와 얼음을 띄워 마시는 음료입니다. 얼음과 레몬을 동동 띄운 저도수 주류이기 때문에, '여름의 와인'이라는 이름답게 더운 여름날 벌컥벌컥 들이켜기에 딱이랍니다. 


 이따금 저는 상그리아를 과일의 탈을 쓴 악마에 비유하는데요, 사과와 오렌지 등 달달한 과일이 잔뜩 섞여있어 음료수처럼 보이는 상그리아에 브랜디 또는 리큐어가 첨가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향긋하다고 주스처럼 마셨다가는 머리가 깨지는 듯한 숙취를 겪을 수 있답니다. 


 이와 달리, 띤또 데 베라노는 알코올 함유량이 상당히 낮으며 상큼하고 귀여운 맛이 특징인지라 '술찌' 친구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화려한 스페인의 밤을 길-게 보내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잔잔한 술기운과 개운함을 선사하는 여름의 성수예요.




 오늘 소개한 다섯 가지의 술 외에도, 스페인 각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츄삐또(리큐어 샷)와 전통주의 세계가 무궁무진합니다. 저 역시 아직 스페인 주류의 세계의 반의 반도 들여다보지 못한 애송이일 뿐이에요.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스페인 각 자치주에서 내로라하는 양조장들을 모두 둘러보며 '스페인 알코올지도'를 제작해보고 싶습니다. 전 세계의 알코올러버 독자 여러분, 저와 그 여정을 함께해 주시겠어요? 



 *더 많은 여행기는 띵시의 블로그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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