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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끝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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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 Apr 01. 2024

마음은 커피가 아닌데

거르고 거르면 남는 게 없을 텐데

고맙다는 말은 지나칠 순간에만 있는 말 같아. 그래서 나는 매번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말 건네며 오래 함께하고 싶은 내 마음을 걸러봐.


미안해.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고, 이런 표정을 지어서 미안해.


이렇게밖에 마음을 못 전해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려면 내가 너를 계속 봐야 하니까. 사과는 둘이서 마주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못된 생각은 숨기고.


그저 '미안.'이 말만 하는 거야.


말을 거르고 거르는 나라서. 마음에 의문은 많고 확신은 없기에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서. 내일이면 툭 건네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무겁게 만들지 않을까 구겨버리는 한숨을 함께 가진 사람이라서.


심지어는 그 말조차 하기 어려워서.


닿지도 못할 사과를 잔뜩 눈에 담고 바라보다 이내 지우고 그저 소리 내어 웃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나.


아낀다.

좋아해.

고마워.


이 세 마디가 어려워 입술만 꼭꼭 씹다가 마음을 꼭꼭 씹어 삼키고 다음에는 전하겠다고 꼭꼭 다짐을 하는 순간의 나 모아 겨우 '행복해.' 한 마디 건네는, 보고 싶다는 말은 결코 전하지 못하는 사람.


겁이 덕지덕지 붙은 비겁한 '나'라는 사람.

움츠린 채 눈을 가리고 불안해하고,

순간에 스칠 불편함을 지레 상상해 버리다,


결국 마음이 커피도 아닌데 거르고 거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너와 나 사이 어딘가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거야.


매번. 이렇게.


사는 거야.


어김없이 눈에 드는 것들을 마음에 담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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