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걷는 여름이 좋았어-1

말없이 건네는 여름의 속삭임

by hoochu

Part 1 — “피서 아닌 피신”


유리창 너머로 여름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부산 특유의 무더위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집 안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끈적한 공기가 맴돌았다. 나는 그 공기 속에서 책가방을 가볍게 둘렀다.

"더운 거 싫어. 공부하는 것보다 땀이 더 나는 건 진짜 반칙이잖아." 말은 가볍게 했지만, 속은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밖은 이렇게 덥고 나는 왜 이걸 견뎌야 하지?‘


"창문 열고 선풍기 틀어놓으니까 나는 시원한데… 조금만 가만있어 봐, 금방 시원해질 거야~" 엄마의 말은 늘 그렇게 느긋했다.


친구들이 4학년 되면 시간 없다고 방학에 해외여행 가자고 했지만, 남들이 돈 들여 휴가지로 찾아오는 부산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 덥고, 마음이 더 끓는 걸까.

"온도는 높아도, 심박수는 낮게 살고 싶거든. 그래서… 도서관에 갈게. 에어컨도 있고, 책도 있고, 걱정 없는 곳. 금방 다녀올게.“


도서관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태블릿이나 휴대폰 충전 가능한 콘센트가 있는 자리였다. 요즘 도서관은 카페처럼 1인석을 잘 마련해 둔 곳이 많았다. 자리 찾으려고 두리번대던 중, 익숙한 실루엣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체격과 반듯한 셔츠 소매, 말 한마디 없이도 어깨선에서 ‘아빠’라는 게 느껴졌다. 살짝 얼굴을 확인했다.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얼굴이었다.


"… 아빠?“

책장을 넘기던 아빠의 손이 멈췄다.

"어…“

아빠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우리는 함께 열람실 밖으로 나왔다.


"왜 도서관에 계세요? 여기가 회사예요?"

"조용히 좀 해줄래?" "내가 조용하면 더 이상하지.“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잠깐만…." 그 말엔 간절한 부탁과, 어디선가 스며 나온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저렇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빠를 본 적이 있었던가.'


정윤은 아빠의 축 처진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방학을 하고 집으로 왔을 때 아빠는 평소와 다르게 말수가 적었다. 식사 중에도 멍하니 창밖을 보기도 했고, 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있거나, 엄마의 질문에 뭐든 ”예. 그게 맞아요" 라는 동의 표시만 했던 게 생각났다.


"나 엄마 닮아서 말 많은 거 알지? 그래도 알겠어. 잠깐만 입 닫고 있을게. 하지만 아빠, 잠깐 만이야."

그날부터, 조용한 도서관 안에서 말 많은 딸과 말 적은 아빠는 말없이 스치듯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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