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걷는 여름이 좋았어-5

말없이 건네는 여름의 속삭임

by hoochu

Part 5 — “우레시노, 녹차의 온기”



밤사이 비가 살짝 내렸다. 젖은 도로 위로 녹차 향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버스로 짧은 거리를 달려 우레시노(嬉野)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언덕을 감싸고 있었다. 햇살은 찻잎 위에서 반짝였다. 초록빛이 마음을 차분히 감쌌다. 바람에 실려 오는 녹차 향이 머릿속 소음들을 잠재웠다.


'이 초록빛 속에서라면, 내 마음도 조금은 평온해질 수 있겠구나. 그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짐들이 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 같아.' 아빠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 향기, 꼭 상처가 아물어가는 냄새 같아."


아빠와 나는 녹차 체험 대신 온천 마을을 따라 걷는 12.5km 트레킹 코스를 택했다.

침묵 속에서 마음이 쉬어 갔다. 아빠는 걸음마다 평소보다 더 깊이 숨을 들이쉬는 듯했다.

녹차밭0.png


우레시안 말차 카페.

도로 안쪽에 숨은 가게였다. 파란색 어닝으로 입구가 만들어져있었다. 카페 안은 다다미 좌석과 낡은 소파, 통창 너머 골목 풍경까지 레트로 감성으로 가득했다.

아빠가 고른 말차 몽블랑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았다.


딸이 고른 말차라테는 쌉싸름한 향과 우유가 어우러졌다.

정윤은 유리 진열대에서 브로치 하나를 골랐다.


"아빠, 엄마는 말이 먼저였고, 아빠는 말이 뒤였죠. 전... 중간이 되고 싶어요."

"그럼 너는 앞사람의 상처도 알고, 뒷사람의 조심성도 아는 사람이 되는 거네.“

정윤은 브로치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아빠, 중간이라는 건 어쩌면… 어떤 말은 아끼고, 어떤 말은 더 많이 들어주는 거 아닐까요?"

아빠는 브로치를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네 말이 맞아."


말차1.png


료칸의 저녁 식탁.

가이세키 요리 접시 하나하나엔 조심스러운 정성이 담겨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아빠는 천천히 음식을 맛보았다.

'이 고요한 정성 속에서, 엉겨 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아빠는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딸도 말없이 아빠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아빠, 이 요리들은 말 안 해도 맛있어요. 그런 말 없는 따뜻함도 있네요."

"사람 관계도 원래 그런 맛이 있어야 해. 말로만 다 만들면... 좀 짜지.“

아빠는 딸에게 가볍게 윙크하며 한마디 더 했다.

"그래도…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걸 아는 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안심이 돼."

가이세이 요리.png


우무라야 료칸.

다다미 냄새가 은은히 퍼지고, 창밖 족욕탕에선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번져왔다.

그저 조용히 숨 쉬는 게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아빠, 마음이 말을 멈출 때... 이런 데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은 원래 자기 안의 차향을 찾아야 해. 그걸 찾기까진 시간이 걸리지만.“

정윤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아빠는 이제 그 차향을 찾으러 가는 길 같아요. 제가 옆에서 같이 걸어줄게요.“

유리창에 비춰진 아빠얼굴에 평온한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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