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건네는 여름의 속삭임
사가의 작은 마을, 다케오(武雄)에 도착했다.
증기가 골목을 따라 천천히 흘렀다. 기와지붕 아래 자전거가 지나가고, 붓글씨 간판이 바람에 살랑였다. 정윤은 로몬의 붉은 문을 지나 오래된 돌길 위를 걸었다.
아빠는 걸음걸이가 한결 가벼워진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케오의 고즈넉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작은 찻집에서 녹차 향이 퍼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얇은 철막대가 일렬로 세워진 도서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곡면 지붕과 벽돌 외관이 어우러진 건물.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렀고, 앞으로는 넓은 주차장이 펼쳐졌다.
드디어 아빠가 와보고 싶어 하던 도서관 내부로 들어왔다. 건물 중앙 천창을 통해 햇살이 유리 지붕을 타고 흘렀다. 은은한 조명 아래 원목 책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와~! 아빠랑 봤던 '인터스텔라'의 장면처럼 웅장하면서도 고요한 느낌이 드네요. 서울의 별마당 도서관이 벤치마킹했다는 곳이 맞죠?"
스타벅스와 츠타야 서점이 함께 있는 복합 공간. 책과 커피, 사람의 숨결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책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나를 보는 것 같아요."
아빠의 시선은 조용히 책등을 따라 움직였다.
"책은 원래 사람 안에 있는 말들을 꺼내주는 도구야. 내가 자주 숨었을 땐, 그게 유일한 창문이었어."
아빠는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의 표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땐 이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엿보는 게 고작이었지. 이제는 창문을 열고 나가볼 용기가 생긴 것 같아.‘
"그런데 아빠, 제가 살아보니까… 사람은 결국 들은 거나 읽은 걸로 말하는 것 같아요. 창조해서 말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 사람은... 천재겠죠?“
아빠는 천천히 책장 사이를 걸었다. 표지에 손을 얹고, 책 등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아빠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림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정윤은 아빠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도서관 밖을 내다보았다.
녹나무가 흔들리고, 자전거가 지나갔다. 그 모든 풍경이 유리창 너머로 조용히 흘렀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문득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네 덕분에, 여기선 숨쉬기가 편하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정윤은 말없이 아빠의 손을 잡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