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건네는 여름의 속삭임
며칠 동안 도서관에서 둘은 마주쳤다.
마주쳤다기보다는 만났다.
정윤은 일부러 아빠가 좋아하는 빵과 커피를 챙겨 도서관에 들렀고,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정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 갑갑하죠? 나랑 여행 가요. 엄마한테 다 말하고 바람 쐬러 가요."
그 말은 제안이자, 어쩌면 부탁이었다.
아빠는 말없이 웃었다.
"국내 말고, 해외 어때요? 아빠가 여행 가라고 준 그 돈, 아직 있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툭 던진다.
"조용한 도시들, 어떠냐. 아빠는 가만히 있고 싶어 며칠 동안."
"조용한데… 맛있는 거 있는 데로 가요. 아빠! 그럼 윈윈게임이야!“
엄마에게 이실직고한 뒤, 둘은 후쿠오카 행 비행기에 탓다.
엄마는 딸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담담하고 너그러웠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린 후, 아빠는 미리 계획해 두었던 렌터카 대신 JR 특급열차를 선택했다. 딸을 돌아보며 작게 미소 짓는 아빠의 얼굴엔 이제 희미한 기대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빠는 정윤이가 들어보지도 못한 사가현의 조용한 마을들로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열차는 도시의 빌딩 숲을 벗어나 초록빛 논밭과 작은 집들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으로 들어섰다. 창밖엔 끝없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과 푸른 들판,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1시간 조금 넘게 펼쳐지는 그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
기차의 규칙적인 흔들림 속에서, 둘의 마음도 조용히 정돈되기 시작했다. 정돈되기 보다는 이유없이 편안해 지는것을 정윤이는 느꼇다. 마치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