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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한 모닝 글로리로 팍 붕 화이댕을 요리했다.

실패했다.

by 보현


남편은 하인두암 수술 후 음식을 잘 못 삼킨다. 입으로 음식을 먹기 어려우니 경관식에 의존해 살고 있다. 경관식이는 나름대로 영양 공급이 되도록 연구를 하였을 터이지만 입으로 먹는 음식만 하겠는가. 마지못한 생존방식이 바로 경관식이이다.


모든 동물은 입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을 취하고 살아왔다. 약 6억 년 전에 생긴 최초의 다세포 생명체는 스펀지와 같은 여과섭식 기능으로 영양을 섭취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동물의 조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시기(약 5억 5천 만내지 5억 년 전)에 진짜 ‘입’과 ‘항문’을 가진 동물들이 출현하였다. 몸의 앞쪽에는 입이 있고 몸의 뒤쪽에는 항문이 있으며 중간에는 소화관을 가진 구조로 진화해 온 것이 진짜 동물인 것이다. 이로서 더 큰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되고, 더 복잡한 소화를 가능하게 하여 더 큰 몸집이 가능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생물진화의 중요 토대가 된 셈이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30만 년 전 이래에도 변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 입으로 먹고 소화기관에서 소화를 시킨 다음 찌꺼기를 항문으로 배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위에 구멍을 내고 위로 바로 음식을 넣는 경관식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만치 부작용도 크다. 제일 두려운 일은 입으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저작기능과 삼키는 기능이 영원히 퇴화할까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계속 삼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억지로 밥을 먹으려고 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음식이 잘못되어 기도로 들어가는 날에는 폐렴으로 인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 남편의 밥상을 지켜보며 나 나름대로 깨달은 바는 그래도 본인의 기호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삼키는 노력을 좀 더 한다는 것이었다. 호화가 잘된 밥과 딱 알맞게 익은 김치, 깔끔한 된장찌개가 그나마 남편을 밥상 앞에서 먹으려는 노력을 좀 더 하게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호화가 잘된 밥과 딱 알맞게 익은 김치, 깔끔한 된장찌개가 어디 쉽냐고. 가정 주부 경력 40년이 넘는 나이지만 밥의 호화상태는 늘 일정하지 않고 김치는 잘 숙성된 상태로 기다려주지 않으며 된장 맛도 다 제각각이다.

그러니 남편에 대해 ‘삼식이’니 어쩌니 하며 불평하는 아내들이 나는 부러울 뿐이다. 나는 늘 삼시 세끼를 어떻게 마련해야 남편이 밥 한알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까를 고심한다.


그런데 남편은 태국 채소볶음인 ‘팍 붕 화이뎅(Pad Phak Bung Fai Daeng)’을 좋아한다. 태국에 주재할 때 자주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매콤 짭조름한 그 맛이 입맛을 돋우는 모양이었다. ‘팍 붕’은 모닝글로리 즉 우리말로 공심채를 뜻하는 태국말이다. ‘공심채(空芯菜)’는 말 그대로 줄기 속이 비어있는 채소라는 뜻이다. ‘화이뎅’은 센 불에 볶는다는 뜻이다. 결국 공심채를 센 불에서 볶아낸 요리가 팍 붕 화이댕이다.


이 요리의 주재료는 물론 공심채이다. 여기에 마늘과 태국식 된장, 간장, 굴소스, 피시소스, 설탕, 프릭 끼누(태국식 매운 고추), 식용유가 필요하다. 요리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웍을 강불에 달군 뒤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 고추를 넣은 다음 빠르게 볶는다. 여기에 공심채를 넣고 재빨리 센 불에서 볶으면서 굴소스, 피시소스, 간장, 설탕 등으로 간을 맞춘다.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기가 이렇게 간단하다. 원재료인 공심채만 있으면 얼마든지 ‘팍 붕 화이뎅(Pad Phak Bung Fai Daeng)’을 요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싱싱한 공심채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동남아인들이 많이 이주해 있는 지방 어느 도시의 장에 가야 싱싱한 공심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근처 슈퍼에서 공심채를 발견하고 무슨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뻤다.

나는 그 공심채를 볶아 ‘팍 붕 화이뎅(Pad Phak Bung Fai Daeng)’의 흉내를 내었고 남편은 그리운 태국 향기(젓갈과 프릭 끼누)에 감격해 내 요리를 아끼며 먹었다. 성공이었다.

집 근처 슈퍼에서 싱싱한 모닝 글로리를 발견하자 나는 연신 재채기를 해대며 공심채를 볶아 남편 밥상에 올렸다. 남편은 매운 맛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공심채 볶음을 먹었다.


IMG_0409.JPG 시중에서 구입한 팍 붕(공심채)


그런데 낭패의 때가 왔다. 여느날처럼 그 슈퍼에서 공심채를 찾아 매대를 뒤졌으나 공심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여러 날 체크해 보았지만 공심채는 더 이상 매대에 누워있지 않았다. 짐작컨데 수요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저장성도 별로 없는 채소이니 슈퍼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해는 되었지만 여간 실망이 아니었다.

더 큰 마켓인 이마트로 갔더니 공심채를 팔고 있어 아쉬운 대로 사서 먹었다. 그러나 노인 두 명의 살림에 이마트까지 장 보러 가기는 성가셨다. 그래서 꾀를 내어 온라인 유통 플랫폼 업체들을 두드려보았다. 과연 배달의 민족답게 없는 게 없었고 공심채를 주문하자 이틀 내에 싱싱한 공심채가 배달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500그램도 팔고 1킬로도 팔았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농장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자라고 있는 공심채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공심채 재배가 어려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다. 나는 당장 공심채 씨앗을 주문하였다. 다음 날 200 립의 씨앗이 들어있는 씨앗봉투 하나가 집 문 앞에 배달되었다. 세상에! 3,300원의 위력이었다.

그때가 4월 초였다.

베란다의 스티로폼 화분에 공심채 씨앗을 뿌렸다. 공심채 씨앗은 씨앗 치고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씨앗을 뿌린 지 열흘이 안되어 콩나물 같은 것이 올라왔다. 보름이 지나자 떡잎 모양이 제법 갖추어졌다. 공심채 떡잎은 마치 나팔꽃처럼 양쪽으로 벌어졌다. 나는 마치 멘델(Mendel)이 완두콩을 관찰하며 유전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할 듯 아침마다 스티로폼 화분 앞에 앉아 물도 주고 식물의 성장을 관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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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보름이 지나자 제법 공심채 모양이 났고 파종한 지 두 달이 지나자 줄기가 제법 통통해진 것이 이제 수확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공심채를 잘랐다. 수확한 공심채의 양이 보잘것없어 실망스러웠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재배한 것이라는 자부심과 막 수확한 채소를 먹는다는 즐거움이 겹쳐 희망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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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채 재배


나는 나의 필살기의 레시피를 꺼내 ‘팍 붕 화이뎅’ 요리를 시작하였다.

먼저 왁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태국 고추 반 개(남편은 수술 후 매운 것을 잘 못 먹게 되었다. 반개만 넣어도 울면서 먹는다)와 마늘을 넣고 재빨리 볶았다. 쁘릭 끼누와 마늘을 볶자 내게서 먼저 재채기가 터져 나왔고 서재에 있던 남편의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왁에 먼저 줄기 부분을 넣고 볶은 후 잎 부분을 넣고 볶았다. 그리고 불을 낮춰 소스를 넣었다. 나의 비장의 태국 간장과 된장과 피시 소스에다 굴소스를 넣고 만든 특제 소스이다. 마지막에 설탕 한 꼬집을 넣았다. 피시소스 냄새가 다시 집안을 강타했다. 실패할 수 없는 레시피였다.

그러나 너무 질겼다. 그리고 공심채 채소가 가져야 할 감칠맛과 향기가 부족했다. 나는 실패를 감지했다.


IMG_0412.JPG 내가 키운 공심채로 만든 팍 붕 화이뎅


남편도 한 젓가락 먹어보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결국 내가 키운 공심채로 남편에게 ‘팍 붕 화이뎅’ 을 만들어 주겠다는 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식물 재배를 너무 얕잡아 보았다. 그냥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맛있는 채소로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배웠다. 나는 스티로폼 화분에 남은 공심채의 줄기를 다 뽑아내었다. 뿌리는 화분 바닥까지 엉겨있었다. 식물들의 살려는 몸부림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언짢았다.

나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 업체에다 공심채 주문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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