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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Nov 03. 2024

정신분석으로 본 정숙한 세일즈

드라마 간단 리뷰


중학교 2학년 여름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공부는 하기 싫고 따분하던 차에 뭔가 섹스를 연상하는 기표가 교과서 한편에 나오자 다들 빵 터지며 눈빛이 초롱 초롱해졌습니다. 남학생들만 있는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지도하는 수업이지만 모두 졸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무리 진정을 시키려 해도 한번 흥이 오른 아이들이 좀차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체념한 듯,


"그래, 수업은 잠시 미루고 너희가 궁금한 것을 이야기하자."

"(나를 포함 다들 함성) 와!!~~~"

"뭐가 그리 궁금하냐. 섹스? 나는 결혼했으니 다 말해주마. 궁금한 거 전부 물어봐."


선생님은 진심으로 우리가 묻는 것은 무엇이던 답해줄 표정이었으나 순간 우리 반 모두는 어색함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부부 생활하면서 이루어지는 섹스나 여성 몸에 대한 궁금한 것을 다 말해주겠다고 빨리 질문하라고 재촉하는 선생님을 막상 마주하자 마치 부모님이 섹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세 살배기 아기 프로이트가 된 것처럼 우리는 얼어붙었습니다. 선생님이 사모님이랑 섹스한다는 상상 자체가 우리를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가 나도 성욕이 있다고 진지하게 자식에게 고해성사하는 듯 역겨웠습니다.





부모나 선생은 나에게 초자아 일종입니다. 그들 약점이 보이고 나보다 못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현실판 초자아들은 남보다 못한 수준으로 나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기에 가까이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거나 초자아로 삼기는 정말 힘듭니다. 이것은 예수도 실패한 것이니 비단 우리 부모들이 유난히 부족하다 탓하기도 애매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누가 4:24 KRV)


가까이 살면 사라지는 것은 초자아로서 권위뿐 아니라 모든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결혼 일 년 차 즈음 아내가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했던 평이 정확합니다. 호주 회계사로 유도나 운동을 열심히 하고 글도 쓸 줄 안다고 해서 뭔가 있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세상 일천한 인간이더라.


 

다시 찾아온 시드니 여름, 고양이 방에서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삶이란 나를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며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존경받는 부모 아래서 자라 (친부모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로 섹스를 즐길 줄 알되 나하고만 하는 배우자랑 어디 한 군데 아픈 곳 없이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2세를 낳아 키우는 평온한 삶이겠지요.


우선 저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부모도 저도 다른 가족 구성원도 그런 스펙이랑은 전혀 거리가 멉니다. 부모에게 완벽한 초자아로서 기대가 망가진 것처럼 아내도 정숙한 섹스 화신이기를 포기했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 말씀에 따르자면 어린 시절 근친에 대한 욕망을 어렵게 극복한 우리 대부분 남자들은 성욕을 느끼기 위해서 엄마나 누이 모습을 전혀 내포하지 않은 싼 티 나고 성욕이 줄줄 흐르는 여자가 필요합니다.


어떤 스타일 여성이 더 훌륭하다 저열하다는 평가는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견지하는 정신분석 입장에서는 그런 도덕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공간에서는 단지 서냐 안 서냐만 놓고 이야기하시죠.


성욕에 충실한 여성이랑 연애를 해보긴 했습니다. 문제는 성욕에 충실한 여성은 다른 분야에서도 충실하기에 속이 좁아 남들 말에 상처받기 쉬운 저 같은 캐릭터는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 역시도 쫌생이 같은 제가 너무도 한심한듯 늘 비아냥 거리고 짜증을 내니 서로 저주하며 헤어질 뿐입니다. 결혼은 고사하고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연애는 파탄이 납니다.


결국 내가 바라는 평탄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엄마처럼 둥글둥글하고 어떤 때는 누이처럼 진중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 결혼을 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냐고요?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되면 희생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섹스입니다. 어느 일본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꽃이랑 열매를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정숙한 세일즈, 2024


프로이트 선생님이나 저나 모두 남자이기에 여자들 심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여자들이라고 불만이 없고 원통함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여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라고 어느 목사님이 그러시던데요. 아내가 요즘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새삼스럽습니다. 김소연이라는 키 큰 배우를 좋아해서 오다 가다 살짝 곁눈질로 보는데 그럼 내가 내용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 아내는 열을 내면서 드라마 줄거리를 설명합니다. 간략하면 이렇습니다.


어려서 총명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공부를 마치지 못한 주인공 한정숙 (김소연 분)은 화려한 외모랑은 달리 평생 시골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결혼 역시 도시에서 다양한 남자를 만나고 울리고 저울질하다가 간택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 놈이랑 해버리지요. 새로운 매력은 고사하고 세상 무능력한 남편은 다른 동창생이랑 바람도 피우다가 심지어 가출도 합니다. 그렇게 이혼도 아니고 별거도 아닌 상태로 가장이 되어버린 정숙은 경찰 대학을 나왔음에도 무슨 일인지 진급하지 못하는 이런 벽오지로 발령 나온 김도현이라는 말쑥한 도시형 남자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이 드라마 줄거리가 맞는 것인지 어떤 내용이 빠졌는지는 모르나 이 극화에 집중하는 아내를 보면서 그가 가진 갈급함이 무엇일까 유추하는 데 사용해 보겠습니다.


1. 어려서 총명했으나 집안 사정이 나쁜 불운한 여주인공

이런 신데렐라 컴플렉스는 시대를 초월하는 메가 히트 소재입니다. 지금 내 인생이 지랄 같은 것은 올바른 초자아에게 교육받지 못한 환경 탓이지 내 게으름이나 부족함은 다음 문제라며 위안을 우리는 받습니다. 여자 남자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지는 핑계이고 유치하고 흔한 자기 정당화로 보겠습니다. 이에대해 더 이상 분석할 것은 없습니다.


2. 부족해 보이는 배우자, 손해 본 결혼

드라마는 김소연이라는 완벽한 외모에 비단결 같은 성품을 가진 여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이런 여자가 나를 대신해서 나보다 더 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니 또 위로가 되겠지요. 남자들 관객 입장에서는 저런 놈팡이보다는 내가 훨 난데 저런 아내를 시골 어디에서 쉽게 건지는 상상을 자극하겠고요.


3. 결국은 외도

정숙 남편은 몸으로, 정숙은 마음으로 외도를 시작합니다. 굳이 성경 말씀을 들이댈 것도 없이 여자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마음으로 하는 외도도 똑같은 외도일진대 정숙은 정황상 어쩔 수 없이 댄디한 경찰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그 남자는 정의로운 경찰로 내가 늘 찾는 완벽한 '초자아'입니다. 단지 세상이 그를 학대하여 지금 내 앞에 있기에 부족한 정숙이지만 용기내어 만나볼 만 합니다.


처녀 총각이 연애하는 드라마는 아무래도 시청자 층이 좁겠고 특히 이 드라마가 타겟팅 하는 주요 고객은 30대 기혼 여성들이니 한정숙은 화끈하게 이혼하고 자유롭게 사는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않습니다. 대부분 아래에서 올라오는 응어리를 누르고 사는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할 테니까요. 결국 작가는 흥행을 위해 정숙에게 참으라고 합니다.


이쯤되면 한정숙에게 동일시를 시작한 관객들을 자극하는 것은 무능력하며 외도를 일삼는 남편입니다. 관객들은 백수 건달에 뻔뻔하기까지한 정숙 남편을 보면서 울화통이 터지지만 이 극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열일하는 것은 저 남편입니다.


이제 나랑 동일시가 끝난 한정숙이 (마음 속으로) 외도를 하기 위해선 남편이 먼저 외도를 시작해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저열하고 최악일수록 내가 하는 외도는 정당성을 받습니다. 만약 남편이 조금이라도 상식을 갖춘이라면 유부녀인 정숙이 하는 사랑은 남편에게 발각되기 전에 여성 관객들에게 먼저 돌을 맞을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관에서 남편이 바람피기를 가장 기도하는 사람은 정숙입니다.


주로 시트콤을 써온 최보림 작가 스타일상 정숙이 경찰이랑 섹스하는 장면이나 그런 관계로 나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편은 그럴수록 더욱 패악질이 심하고 정숙이하는 마음고생은 관객들에게 상품이 되어 시간이랑 교환합니다.


남자들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며 생긴 다양한 부작용, 신경증이나 발기 부전 따위가 있듯이 여자들 역시 작은 동네에서 부모나 지인 소개로 만나, 아버지나 집안 오빠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근친하듯 결혼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음을 예측해 봅니다. 여성들도 타지에서 온 신비한 남자에게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부작용이 있어 보이네요.


아저씨들 농담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아내에게 '가족끼리 이러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정신분석 식으로 표현하면 '어렵게 근친 욕망을 극복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 사회에서 바람직한 신경증자라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안에 성욕구를 포기했다는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 능글맞은 그 말에 숨어 있는 것은 고국에서는 불법이지만 매춘을 통해 다른 식으로 욕구를 해결한다는 뉘앙스로 읽힙니다. 제가 너무 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진짜로 성욕을 포기한 사람은 저런 농담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렴해 보이는 여성에게 성욕을 느끼지만 여성들은 그런  싸구려 언행을 하며 남자를 후리려는 여자를 경멸하며 자신은 반대로 반듯한 이미지를 구축하려 합니다. 그리고 성요구를 채울 남자를 볼때도 싸보이는 스타일보다는 교육 수준도 자신보다 높고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살기에 오히려 피해를 당하는 거세당한 삼손 스타일을 선망합니다. 하지만 거세 수준은 영구가 아니라 언제든 복구할 수 있는, 기왕이면 나만 세울수 있는 수준이어야겠습니다.

 



누군가가 열광하는 판타지나 꿈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나는 역으로 그가 가진 욕망을 쫓아 올라가는 길을 찾아보니까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어제 꿈을 이야기하거나 이런 글을 쓴다는 사실을 비밀로 합니다. 나랑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작가님들하고만 이렇게 나누는 것으로 하지요.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References:

개역 한글 성경

정숙한 세일즈 (드라마) - 연출 조웅, 극본 최보림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1905) 우리말 번역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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