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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Nov 12. 2024

선캄브리아 회고록

선캄브리아 회고록   

       

먼 옛날 중력이 태양 주변의 먼지를 소똥구리 작업하듯 끌어모아 8개의 구(球)를 만들었다. 그중 세 번째 구가 지구다. 지구는 생성 직후 화성 크기의 테이아와 충돌, 파편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달이 되었다.

자이언트 임팩트 이후 5억 년의 세월. 이 시기를 명왕누대라 부른다. 이때 지구는 테이아 충돌 파편이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불타는 덩어리였다. 뜨거운 용암이 끝없이 이어지고 화산 활동이 쉴 새 없이 진행되는 마그마의 바다라고 불리는 시대다.


명왕누대는 지구가 오븐 속에서 요리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수천만 년의 가열 끝에 마침내 지구는 적당히 잘 구워졌다. 뜨거운 열과 태양의 방사선 샤워로 완전 무균 상태의 요리가 탄생했다.

이때는 화성이나 금성처럼 생명체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만일 한 인간이 꿈속에서라도 그곳에 있게 된다면,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자살 충동이 저절로 일어날 분위기라 생각된다.

   

테이아 충격이 진정되고 운석 충돌도 잦아지면서 지표면이 식고 암석과 지각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축되어 암석 위를 채우면서 바다가 생성되었다. 오븐에서 구워진 빵이 어찌하다 수제비가 된 셈이다.

이 시기에 달은 지금의 절반 거리에 있었다.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인력이 크다는 얘기다. 달의 인력이 바다를 수백 미터까지 끌어올리고 팽개치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요리를 위해 지구를 반죽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의 패대기과 번개의 전기충격, 태양 방사선의 화학충격이 지구를 볶는 에너지로 작용했다. 또한 외계에서 날아든 유성이 지구에 양념으로 보태졌다.

지구 분자들의 볶음과 패대기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분자가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밀러 실험에서는 전기충격만으로 단 일주일 만에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성되었다.     

마그마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모든 생명체의 공통조상 루카가 출현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40억 년 전의 일이다. 물질이 생명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부분은 예전에 “분자문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허접한 상상력이 가미된 루카에 관한 이야기다.

생물학에서 루카의 존재를 추정하는 이유는 에너지 대사, 세포막 형성, 단백질 합성 등 생명체 유지에 필수적인 프로세스가 모든 생명체에서 같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 공통적이라면 당연히 이들 기본적인 유전자들이 동일한 기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남으로써 명왕누대는 막을 내리고 시생누대가 시작되었다.

시생누대의 주인공은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다. 다른 단세포생물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아있는 화석이 없어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가 없다.

이 시기의 생물기술은 광합성이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것은 석유로 난방을 하거나 자동차 연료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류의 산업혁명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듯이 지질시대도 똑같다. 새로운 기술이 기후를 변화시키고, 기후는 환경을 바꾼다. 환경은 다시 문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지질시대의 빙하기와 대멸종은 자연재해도 있지만 생명체 메커니즘과도 관련이 있다.

남세균의 광합성으로 산소가 폭발적으로 배출되었다. 산소는 하나의 재앙이었다. 산소는 단단한 철마저 부식시키는 독성가스다. 남세균 배설물이 지구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었다.  

   

광합성은 “멜라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을 발명함으로써 가능했다. 멜라토닌은 항산화작용, 즉 유해한 산소를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학자들은 멜라토닌을 생명체에서 나타난 최초의 호르몬, 호르몬 화석이라고 말한다.

깃털에 방수 처리된 새는 물에서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새들은 익사할 수밖에 없다. 남세균은 멜라토닌으로 산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반면, 그렇지 못한 혐기성 생물은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혐기성 생물이 멸종당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산소가 없는 곳을 찾아 생존을 유지했다. 현재도 동식물 내부에 산소가 희박한 곳에는 이들이 살고 있다.


광합성에 대항하는 기술도 출현했다. 호흡하는 생물들이다. 호흡은 대사과정이 광합성과 반대다. 산소를 흡수하고 배설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남세균 그늘 밑에서 이들 존재성은 미미했지만, 이들은 진핵생물의 특성이 되어 훗날 지구의 주역이 되는 생물 대부분이 호흡 메커니즘을 사용하게 되었다.

시생누대는 명실공히 남세균 세상이었지만, 한 귀퉁이에서는 반대세력도 함께 공존해 온 생명 역사이기도 했다.


4억 년에 걸친 남세균 산소 배출은 끝내 기후변화를 불러왔다. 광합성 연료인 이산화탄소가 줄고, 대기 중의 메테인은 산소와의 반응으로 산화되어 갔다.

이산화탄소와 메테인은 대표적인 온실기체다. 온실기체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온실기체가 엷어지면서 지구 최초의 빙하기, 휴로니안이 찾아들었다. 현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5억 년에 걸친 시생누대가 끝나고 원생누대가 시작되었다.

선캄브리아 누대는 산소를 기준으로 나뉜다. 산소가 전혀 없던 명왕누대, 산소가 생기기 시작한 시생누대, 산소가 풍부했던 시대가 원생누대다.

원생누대는 20억 년 동안 지속한 지구 역사상 가장 지루하고, “눈덩이 지구”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일설에 의하며 눈덩이 지구 원인이 로디니아 초대륙에 있다고 한다. 지각이 갈라지면서 용암이 분출하여 지표면에 대규모 현무암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현무암은 이산화탄소 흡수력이 뛰어나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현무암이 포집, 지구 온실효과를 축소해 빙하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진화에서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눈덩이 지구”가 생물들에게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강제했다는 점에 있다.    

 

육지는 지루했지만, 그러나 바다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원생누대의 주 무대는 바닷속이다. 육지는 적도까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어 뭔 지랄을 해도 작품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바닷속에는 해저화산이라는 마그마 굴뚝이 있다. 그곳에서 황화수소가 모락모락 피워 올라 이를 먹이로 삼는 생물이 번성했다. 광합성을 하는 황세균이 대표적이다.

남세균은 호기성이고, 황세균은 혐기성이다. 둘의 성질은 극과 극이지만 광합성 메커니즘은 같다. 광합성 재료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남세균에게 필요한 것은 물, 이산화탄소, 태양 빛이다. 반면에 황세균에서는 물, 황화수소, 열수분출공에서 나오는 화산 빛이다. 배출물도 남세균은 산소지만, 황세균은 황을 배설한다.     


첫 진핵생물, 다세포생물, 해초류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원생누대 말기에 등장했다.

에너지가 부족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명체들은 최대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쪽으로 잔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세포생물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산소였다.

하나의 세포가 다세포로 뭉치려면 콜라겐이라는 접착제 물질이 필요한데, 콜라겐 분자를 결합시키는 것이 바로 당시에 풍부했던 산소였다.

세포가 연합하여 덩치를 키우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적어 생존에 유리하다. 또한 세포가 집단으로 운동할 때 단독으로 움직일 때보다 100배나 더 효율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연히 먹이를 찾거나 쾌적한 환경으로 이동할 때, 단세포보다 다세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미생물들이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일부 고세균은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과 광합성을 하는 세균과 연합하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진핵세포로 진화했다.

산소 호흡하는 세균은 미토콘드리아로 변신했고 광합성하는 세균은 엽록체로 변신해 고세균 내부에서 공생하였다. 이로써 진핵세포는 에너지 획득과 소비에서 우월한 생명체가 됐고, 생명의 진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원생누대 20억 년 기간은 생물들이 저마다 생존 기술을 모색하는 기술개발 기간이었던 셈이다. 이 시기 말기에 나타난 에디아카라 생물군이 캄브리아기 생물 대폭발 씨앗이 되었다.  

   

40억 년 기간의 선캄브리아가 끝나고 현생누대가 시작되었다.

현생누대는 캄브리아기(5.4억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생물체 원형(기원)이 처음 나타났던 시대다. 소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생물 진화는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진화의 여행 중에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빙하기를 겪고, 다섯 차례 대멸종 사고도 있었지만, 진화의 동력은 멈추지 않았다.

또한 여행 중에 많은 생물이 사라졌고, 새로운 생물들이 생겨났다. 사라진 것들은 화석으로 남고, 살아남은 것들은 오늘날까지 “생명”의 족보를 이어오고 있다.


진화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범우주적인 자연현상이다. 물질도 진화하고 우주도 진화한다. “변화”한다는 점에서 진화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빅뱅 이후 처음 만들어진 물질은 양성자 하나짜리 수소였지만, 여기에 다른 양성자가 달라붙으면서 주기율표에 보이는 모든 원소가 만들어졌다. 마치 단세포가 다세포로 진화하듯이.

우주 규모에서는, 별이 모여 은하를 만들고 은하가 모여 은하단(군)을 만든다. 은하단이 모여 초은하단을 구성한다. 초은하단은 수백만 개의 은하가 모인 그룹이다.

우주에서 우리 지구의 주소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국부은하군 은하수 태양계 3번지다.     


생명의 역사에 빙하기와 대멸종 사고가 있었듯이 우주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신성 폭발, 블랙홀, 행성 충돌, 암흑에너지 등 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많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구는 살아남았고 생명을 잉태하기에 이르렀다.

빅뱅 이후로 많은 별이 사라지고, 새로운 별들이 생겨났다. 사라진 것들은 전파로 남고, 살아남은 것들은 오늘날까지 “우주”의 족보를 이어오고 있다. 지구도 그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이 우주에서 지금의 “나”가 있기까지 138억 년의 임신 기간과 모험이 필요했다.

제목은 “선캄브리아 회고록”이지만, 이 서사시는 어쩌면 “나의 존재”에 대한 회고록일지도 모르겠다.

멀리 138억 년 전부터 선캄브리아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모든 생명체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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