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의 마주침
보통의 시계에는 오전과 오후의 구분이 없으니
17시라고 해야할지 5시라고 해야할지
정확히 정할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은 17시 42분이라고 해두겠습니다.
42분이 아니라 2분이었다면 합쳐서 두 음절이니
아마 5시 2분이라고 했을 겁니다.
배터리가 다 된 시계를 말하는 겁니다.
마지막 힘을 낸 후 멈춘 자리가
17시 42분이라는 얘기고요.
보통의 경우 배터리를 갈고
다시 시간을 맞추는 것이 보통의 선택이지만
그냥- 뒀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계는 째깍째깍 움직이는데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그런 시계가 오히려 돋보이고
가치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날마다 가만히 서 있는 멍청한 시계를
들여다 보곤 합니다.
17시 42분이 특별한 시간인 것은 분명 아니지만
17시 42분에 멈춰선 시계와 함께 조우하는
17시 42분은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듭니다.
이 멍청한 시계는 날마다 이 지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다행히도 17시 42분에는 매번 귀가완료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번,
매일 이 순간을 시계와 함께 할 수 있죠.
시계와 같은 단순한 기계적 장치는
힘이 다 하기 전까진
최선을 다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겁니다.
멍청하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꽤 장렬한 전사의 현장을
매일 발견하는 셈입니다.
날마다 힘이 다 한 시계를 보며
생각합니다.
오늘은 얼마나 장렬히 살았지?
오늘은 얼마나 노력했지?
오늘은 힘을 다 했어?
힘이 다 된 것도 아니고
고장난 것도 아니면서
힘이 다 한 것처럼
고장난 것처럼
앉아있는 것으로
눕지 않았다고 위로하시겠습니까?
멍청한 시계 하나 정도 방 안에 두신다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