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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이진성 Jul 22. 2022

멍청한 시간

매번의 마주침

보통의 시계에는 오전과 오후의 구분이 없으니

17시라고 해야할지 5시라고 해야할지

정확히 정할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은 17시 42분이라고 해두겠습니다.

42분이 아니라 2분이었다면 합쳐서 두 음절이니

아마 5시 2분이라고 했을 겁니다.


배터리가 다 된 시계를 말하는 겁니다.

마지막 힘을 낸 후 멈춘 자리가

17시 42분이라는 얘기고요.


보통의 경우 배터리를 갈고

다시 시간을 맞추는 것이 보통의 선택이지만

그냥- 뒀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계는 째깍째깍 움직이는데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그런 시계가 오히려 돋보이고 

가치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날마다 가만히 서 있는 멍청한 시계를

들여다 보곤 합니다.


17시 42분이 특별한 시간인 것은 분명 아니지만

17시 42분에 멈춰선 시계와 함께 조우하는

17시 42분은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듭니다.


이 멍청한 시계는 날마다 이 지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다행히도 17시 42분에는 매번 귀가완료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번,

매일 이 순간을 시계와 함께 할 수 있죠.


시계와 같은 단순한 기계적 장치는

힘이 다 하기 전까진

최선을 다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겁니다.


멍청하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꽤 장렬한 전사의 현장을

매일 발견하는 셈입니다.


날마다 힘이 다 한 시계를 보며

생각합니다.


오늘은 얼마나 장렬히 살았지?

오늘은 얼마나 노력했지?

오늘은 힘을 다 했어?


힘이 다 된 것도 아니고

고장난 것도 아니면서


힘이 다 한 것처럼

고장난 것처럼

앉아있는 것으로

눕지 않았다고 위로하시겠습니까?


멍청한 시계 하나 정도 방 안에 두신다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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