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적 없는 불행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뇌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행복은 불행에 비해 짧고 사소하다. 그래서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그 짧은 찰나를 야금야금 잘 받아먹었어야 했다. 그 순간을 자꾸 행복이라 이름 붙여줬어야 했다. 대단히 불행했느냐면-, 대단치는 않았을 텐데. 평탄하고, 큰 굴곡은 아니었고, 그런대로 견딜만한 불행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만한 게 행복이야 라고 가르쳐준 이는 없었다. 행복이란 아직 없던 것이라 계속 앞으로 찾아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본 적 없었다. 행복을 위해 공부하라는 흔한 동기부여도 없었다. 다들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저 큰 문제가 없으면 문득 '요샌 조용하네' 싶었다. 그게 행복 맞았나? 회색빛 어린 푸른색. 그만하면 내가 느끼기엔 밝았다. 조금이라도 행복하려면, 그 정도의 밝음을 자꾸 알아채야만 했는데.
가정의 무탈함은 행복을 쌓기 위한 기둥이었다. 이렇게 어른이 되고, 독립을 하고, 다른 가정을 이룬 뒤에도. 우리네 기둥 어느 한쪽은 튼튼하다가도 제 멋대로, 가끔 위태위태했다. 저마다는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그 위태로움을 온순함으로든, 중재로든, 거짓 웃음으로든 같이 받쳐온 아이들은 이제 지긋지긋해했다. 다들 조금 이르게 부담되기 싫다며 독립을 감행했지만, 그게 모종의 이유로 대단한 애착은 되지 못한 가정을 떠나고 싶은 (그때는 몰랐던) 첫걸음이었던 걸 아주 뒤늦게서야 인정했다. 그동안 그게 멀쩡한 것인 줄 알았기에.
다른 가정을 이루는 건 어쨌거나 이전의 기반에서 시작되었다. 기존의 기둥이 조금 쇠해도, 내가 조금 큰 기둥이 되고 옆의 다른 기둥과 지반을 넓혀가는 것과 같았다. 균형은, 무게중심은, 조금만 흔들려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받쳐본 경험이 있는, 함께인 기둥들은 그래도 더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양쪽 모두에 같은 전제가 필요했다.
기둥이 되어주세요, 행복을 물려주세요.
내 마음 한 켠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어릴 때 겪는 가정의 양분만이 큰 상처가 되는 줄 알았다. (가정의 유지가 그렇다고 반드시 화목과 연결 지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가정의 한 일원으로서, 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아이였다면 그저 따라가고 받아들이면 되었을까. 아니, 더 이해할 수 없을 것이 많았을 터. 그 불안함을 다른 어른들의 힘을 빌려도 온전히 버틸 순 없었겠지. 이제야 겪는 부모님의 이혼은 마치 내 이혼 같다. 어떻게 당사자들의 심정에 모두 빗댈 수 있겠냐마는.
아무리 '우리'는 단단해도 영향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지반을 흔드는 그것은 적어도 나 하나에 균열을 내기엔 충분했다. 나는 지극히 예상되는 바대로 마음을 감추는 것을 택했다. 이게 무엇으로 끝나든, 지나가는 불길로 내게 소중한 것들을 엉뚱하게 태울 순 없었다. 티가 나버린 가난까진 어쩔 수 없어도, 내 마음의 부족함을 새 터에 당연하게 시작부터 마이너스로 심을 순 없다.
지금 나는 평온함을 안다. 그게 가장 행복에 가까운 것인 것도 안다. 처음 느껴본 평온함 역시 '벗어남'에서 왔던 것도 이제야 안다. 늘 내 색에 입혀져 있던 회색이 삶에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데, 항상 그늘로 드리워 있었다. 내 어둠은 당연히 가정환경에서 왔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어 그렇게 들여다봤어도 나를 절로 톤다운된 색채로 그려냄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단한 행복은 어차피 환상이다. 남들이, 사회가 만들어 준 행복한 삶에 대한 포장도 넘쳐난다. 1년에 하나정도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5년쯤이면 적어도 어떤 계열의 색을 칠해야 할지는 알게 되겠지. 내 행복은 찬란한 색은 아닐 것이다. 남들보다 좀 힘겹게 찾아도 나라면 끝내 헤쳐내고 찾아내긴 하겠지, 나의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