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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Oct 22. 2023

친해지는 것, 계속 친할 것

관계의 시작보다 어려운 유지


나는 어른이 되며 부친에게 성격적으로 많은 지적을 당했다. 너무 조용하고 진지하고 생각만 많은 내 성격은 세상 살아가는 데 별로라고 했다. 그 말엔 조금 공감했다. 나도 내가 답답할 때가 많았다. 결과적으론 그 지적이 나를 예상보다 빠르게 바꿔놓았지만, 그것이 지적 때문이었는지 그저 갇혀 있던 가정환경을 좀 벗어나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원래부터 집에서의 그런 성격이 아니었는지도.


사람들은 때로 나설 수 있다는 것,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 인맥이 넓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이전의 나는 그런 것과는 영 거리가 멀었고, 그것이 조금 결함인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에서 꽤 자주 주눅 들곤 했었다. 하지만 속해있고 정해지는 그룹이 계속 바뀌던 학생이던 때와 지금의 인간관계는 내가 느끼기엔 천지차이다.


관계는 새로 맺는 것보다 좋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관계를 맺는 속도보다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관계를 관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긴 인연이 이미 조금쯤 굳어진 인간관계 안에서, 내적 갈등은 다독이고 외적 갈등은 풀어낼 수 있어야 했다.


더 어릴 때, 좀 불편했던 친구는 내년에 반이 바뀌면 그만이었고 하염없이 싫은 직장상사는 퇴사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슬슬 눌러앉은 자리에서 내가 을일 수밖에 없을 때, 지지고 볶아도 같이 지내야 할 가족일 때, 또 말 안 듣는 자식 놈과는 어디서부터 잘못 됐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건지, 끊어낼 수 없이 교정해 가야 하는 관계는 어렵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 외향이나 내향을 굳이 나누어 가르는 방식이 어렸던 때의 관계 맺는 방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만큼 내향적이진 않으신데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하는 얘기.. 일지도.) 다들 정작 어른의 관계에 매일같이 치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아니, 아직 마음이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이 어리숙하게 운영하는 그 관계가 문제인 걸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표현하는 건 모난 구석 없이 두루두루 친할 순 있어도, 가끔 내 그룹을 스스로 불분명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나의 소속은? 딴엔 남을 배려한다고, 튀지 않겠다고 놓쳐버린 내 마음에 너무 당연하게 제 주장만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의 색깔은? 흐릿한 게, 어디에든 섞일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였을까. 왜 활달하면서도 막 나서선 안 된다는 그 모순이 이상이라고 주입당했을까. 그렇다면, 세상은 실제로 그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걸까.


매사 모든 일이 분란이 되지 않으려면 분명 그들 주변엔 속내를 감추고 따라주는 이들이 많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고, 인간관계라는 걸 고민하지 않고 지내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조금쯤은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한 관계 안에서도 여러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것들이 있다. 쌍방의 관계는 각각의 정의도 두 가지라서 객관성이 결여되고, 조물주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들여다볼 기회는 우리에겐 없다. 모두의 제 입장은 옳다.


나의 '관계'에 대한 모든 고민은 여기가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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