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바다 슈퍼와 비눗방울
지난 3년간 제주살이를 회상하며 사계절 순서대로 글을 쓰려다 보니 계속해서 봄에 머물고 있다. 봄 제주는 정말 아름답다. 제주도 전역에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 “꽃 섬” 그 자체가 된다.
그 봄, 3월. 이번에는 어느 바다 이야기이다.
봄이 되면 이제 올해 바다는 언제 따뜻해지려나, 언제쯤 들어가 놀 수 있으려나 기웃기웃하게 된다.
한림의 어느 바닷가에 백년초가 열리는 선인장 마을이 있는데 해안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백년초! 십여 년 전 제주도로 수학여행 왔을 때도 간식으로 샀던 “백년초 초콜릿”이 생각났다.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선인장 군락으로 2001년 9월 11일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되었다. 국내의 유일한 자생종으로 멕시코가 원산지인 선인장은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는데, 이곳 주민들은 선인장이 손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손바닥선인장'이라 불렀다. 옛날부터 쥐 나 뱀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집 돌담에 옮겨 심어 지금은 월령리 마을 전체에 퍼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210m가량의 짧은 산책로가 해안가를 따라 잘 조성되어 있었다. 나무 데크 길이라 아이들도 걷기 좋았다. 산책로 양 옆에 선인장 군락이 바위 위로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 덕분에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3월 중순은 마침 선인장에 동글동글 귀여운 보라색 백년초 열매가 열려있는 시기였다.
어린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면 언제나 아이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출발하기 전 지도에서 "바다 편의점"을 찾아놓았다.
바다 편의점이 산책로 반대편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산책로를 완주할 수밖에 없으리라. 우하하하.
저 길의 끝에 슈퍼가 있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다고 하자 어린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라 우리 남매! 적절하게 간식을 활용하면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산책로를 끝까지 걸어 바다 편의점에 도착했다. 어린 시절 동네 슈퍼 같았던 바다 편의점. 산책로와 가까워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시 선인장 군락지로 돌아왔다.
붐비는 관광지가 아니라서 산책로에 사람이 없었다. 월령리 선인장을 배경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우리 어린이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우리에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노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언제까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
잠시 누렸던 조용한 시간들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어린이들에게도 즐거운 산책이 되려면 우리에겐 다음 아이템이 필요했다.
짜잔~ 비눗방울 총이다. 마트에서 미리 사두었던 비눗방울 총! 나들이를 할 때면 아이들의 시선을 끌만한 놀잇감을 늘 준비해서 다니는 편이다. 비눗방울 총을 들고 가만히 서있을 수 없지.
달려라 달려~~~~!!
이렇게 어른도 아이들도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산책로 주변에 아주 작은 해변이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모래놀이를 했다. 봄에 만난 바다. 아직 바닷물이 차가워서 이렇게 바다에서 얌전하게 놀 수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옷이 다른 이유는 갈 때마다 코스가 같아서 여러 날 사진을 담았기 때문이다.)
어제 갑자기 아들이 말했다.
아들 : 엄마! 선인장 마을에 가고 싶어요!
나 : 왜? 선인장이랑 바다 보고 싶어?
아들 : 아니요. 바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싶어요.
하하.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가 너희들의 추억 속엔 바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곳으로 기억되겠지.
국내 유일의 선인장 자생지! 천연기념물 제429호! 그런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좋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즐거움이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것도 참 재미있다.
제주살이 3년 차, 아직 미취학 아동인 우리 아이들은 자연 그 자체를 누리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 속을 아이들과 함께 누빌 때면 다양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특히 오름을 오를 때면 더더욱.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