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함께 꺼내 놓은 나의 진짜 이름, 조준영
나는 군대 짬밥과 회사밥을 합쳐 10여 년을 먹으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좋은 상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 내가 글쓰기로 좋은 상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2022년 7월, 나의 첫 브런치 글이 세상에 나왔다. 그 순간 나는 정식으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내 이름 석자를 걸고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정체성과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곤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초라한 조회수가 민망해, 나는 필명 뒤에 숨어 있었다.
필명을 방패삼아 나의 작은 기록들을 하나둘씩 써 내려갔는데, 의외의 반응이 찾아왔다. 게임 산업에서 일하는 동료들, 회사 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이 내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앞길이 어둡기만 했는데, 글을 읽고 길을 찾은 것 같다"는 짧은 한 줄은 내 글을 보는 관점을 바꿔 놓았다. 글을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처음으로 필명 뒤에 숨지 않는 작가의 꿈을 진지하게 품게 되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여전했다. “내가 과연 본명을 걸고 쓸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해 보기 좋게 떨어졌을 때, 내 실패는 지인들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필명으로 책을 집필했고, 2023년에는 개인 출판을 통해 작가로서의 소질을 시험해 보았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 긍정 리뷰가 10페이지를 넘겼고, 종이책으로 출간해 달라는 독자까지 생겼다. 필명은 나에게 안전한 방패였지만, 이제는 나를 가두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이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높을 준, 빛날 영. 그 뜻처럼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 주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한 번 깊어졌다.
글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변화시켰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노트북을 켜 글을 쓰는 시간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때로는 익명의 독자가 남긴 한 문장의 댓글이, 나로 하여금 다시 쓰게 만드는 연료가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불빛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2025년부터 나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더 이상 필명 뒤에 숨지 않고, 내 이름 그대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조준영'이라는 이름으로, 등대처럼 세상에 작은 빛을 내는 글을 남기고 싶다. 거창한 명성이나 화려한 성취가 아니어도 좋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통해 조금 더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브런치 10주년을 맞아 걸어온 시간을 돌아본다. 내게 브런치는 단순한 글쓰기 플랫폼이 아니라, 작가라는 이름을 처음 허락해 준 공간이었다. 필명으로 시작해 본명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결국 브런치가 만들어준 작은 역사이자, 앞으로도 이어갈 나의 꿈이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어둠을 건너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러나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지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쓴다는 건 내게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작은 등대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