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이라는 꿈 속에 닥쳐온 재난
영화는 과거 아파트들이 처음 지어지던 70년대를 플래시백하여 보여주며 집, 특히 아파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서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은 '아파트'를 감옥같고 답답해보인다고 말하지만, 그 감옥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다. 마치 인셉션에서 아리아드네의 파리가 90도로 접혔던 것 같은 지진으로 서울은 초토화가 되어버린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인 황궁아파트, 작중의 서사는 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입주민들은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기를 원하는데, 민성의 제안에 따라 영탁을 대표로 선출하게 되고, 아파트 단지는 하나의 나라가 되어 자치활동을 시작한다.
평소 입주민들을 멸시하던 드림팰리스에서 온 외부인들을 내쫓는 과정 속에서 방범대가 결성되는데, 이들은 단지내 방범 뿐만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 식량들을 찾는 활동 또한 병행한다.
관객들은 이들이 새롭게 바뀌어버린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들을 주인공들의 방백을 통해서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장면들은 더킹에서 태수가 사시에 합격하는 장면을 떠올랐는데, 대다수의 영화들처럼 서론을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고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을 때, 두가지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입주민들이 바퀴벌레라고 칭하던 외부인의 습격과 영탁이 사실은 영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장면이다.
극 초반부 드림팰리스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 반상회를 열었을 때 영탁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쫓을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명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반대를 표한다.
이 과정 속에서 무너진 외부인들을 몰래 숨겨준 이들이 발각되어 수치스러운 처벌을 받게 된다.
더불어 초반부 외부인에 의해 자상을 입어 단지내 활동 기여 부족으로 터무니 없는 양을 배급받던 한 중년남성의 불만이 배신의 시발점이 되어 외부인들의 침입이 발생한다.
이 사건과 연계되어 중반부 타지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혜원이, 옆집에 살던 영탁이 주민대표 영탁과 다른 사람임을 말하며 사람들이 영탁의 시체를 찾아 영탁에게 항의했을 때, 아파트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결국 공성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민성은 명화와 도피를 하던 중 잠든 성당에서 기구한 삶을 마감하고, 절규하던 명화 앞에 바퀴벌레라 불리던 이들이 나타나 명화를 그들의 터전으로 이끌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작품을 재밌게 본 이유는, 소위 말하는 K-신파를 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이 어째서 발생했는지, 정부는 그걸 어떻게 수습하는지, 어떻게 구조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생존자들에게 시선을 돌려 각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할 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서사에 쉽게 몰입하게 되고, 마지막에 가장이었던 민성의 죽음과 명화릐 절규에 의해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한다.
'내집마련',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영탁, 아니 세범은 매매사기를 당하고 사기범 영탁에 집에 처들어가 몸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영탁을 살해한다.
그 직후 지진이 일어나 세범은 얼떨결에 주민 대표가 되고, 내 집을 지키기 위해 지도자로써 지팡이를 들었다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은 집이라도, 권력이라도 지키기 위해 학살자로써 총을 들게 된다.
사기를 당함으로 내집마련의 꿈과 함께 가족까지 잃어버린 영탁은 서사 내내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다가 결국 그토록 원했던 902호에서 숨을 거둔다.
민성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소개팅으로 만난 명화와 결혼했다.
그의 꿈은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는 것이었기에, 명화와 영탁의 대립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하나뿐인 가족 명화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비록 그가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여성을 구하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원정을 나가 발견한 마트 주인과의 대립 속에 주인이 죽었을 때 가지는 감정들은 그도 명화와 같은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명화나 영탁과는 달리, 가정을 지키고 집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무뎌진 것이다.
결국 명화가 원치 않던 방향으로 변해가던 민성은 성당에서 명화에게 그간의 행동을 참회하며, 이른 아침 아름답게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서 숨을 거둔다.
결국 주인공 모두가 행복하고 단란한 내집을 꿈꿨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게 된 셈이다.
제목은 유토피아이지만, 사실 디스토피아였던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과 안어울리는 음악과 배우들의 표정으로 그들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유토피아라 자위하지만, 관객들은 아이러니 속에서 이 곳이 유토피아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밖으로 나가면 다 죽는다는 입주민들의 주장과는 달리, 따뜻한 밥을 해먹던 명화의 표정 속에서도 황궁아파트는 정녕 지상 낙원이 맞았는가에 대한 떨떠름함을 지울 수가 없다.
관객들에 따라 초반부 외부인 퇴출에 대한 찬반 여부가 많이 갈릴 것이다.
또 악에 치닫는 영탁이나, 민성을 보며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만을 생각하며 영탁을 전적으로 지지하던 부녀회장이 자식의 사망을 보며 영탁에게 거센 항의를 할 때 얌체같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집은 편하게 쉬어야 하는 공간인데, 집이 뭐라고 어느 순간 한국인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미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살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신경쓰는 스트레스들은 어느덧 어른들의 뇌 한켠에 크게 박혀있다.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 떄문에 결국 주인공들의 입장과 감정에 몰입을 한다.
한국인의 집에 대한 광기어린 혹은 안타까운 집착과 애정이 잘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어느샌가 한국 상업 영화는 신파극이 아니면 뇌를 빼고 보는 액션 영화 밖에 남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진입 장벽이 낮아 가족단위 관람으로도 좋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점점 전개가 너무 뻔해지고 심지어 모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영화 제작 발표회 이후 상상으로 줄거리를 지어냈다가 제작이 잠정 중단된 사례도 있었다.
덕분에 극장에서 국산영화의 성적은 참패를 기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 상업영화의 한줄기 빛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범죄도시나, 밀수에 해당되는 후자, 더 문이 가지고가는 전자라는 포지션 속에서 필자는 밀수 보다도 감명깊게 본 영화다.
영탁의 이병헌, 민성과 명화를 맡은 박서준과 박보영씨가 연기를 엄청나게 잘한 것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입봉작품인 두번째 장편영화 작품을 우리네 삶과 밀접한 주제로 높은 완성도의 줄거리, 연출, CG등을 만든 엄태화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배우 엄태구 씨의 형제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가볍게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영화를 보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 추가로 배우 이병헌의 진짜 배역, 모세범과 관련한 종교적 해석이 있는데, '모세'의 스토리를 '모세'범에 메타포한 것들을 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