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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AN Jul 19. 2023

#004. 이 연애가 다른 이유

DIY FAMILY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풋내나는 소꿉놀이부터

질풍노도 20대 초반의 열정적인 연애,

장기연애 후의 반작용으로 저지른 20대 중후반의 불장난들까지.

나는 연애에 있어 순진무구한 도화지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이례적인 장기연애 후 나는

로맨틱한 관계에 매우 방어적으로 변해 언제나 정서적인 거리의 선을 지켰다.

그 사람이 선을 넘으려는 순간, 강한 거부감으로 밀어냈다.

내가 정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마음을 정리하고 도망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남자와의 연애는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로, 이 남자는 나의 선을 절대 넘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저 멀찍이에 서 있었다.

내 점심 저녁 메뉴나 일상 계획 따위를 물어오지 않았고,

내가 굳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캐묻지도 않았다.

나에게 정서적인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두 번째로, 나 또한 도망가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우리는 가벼운, 캐주얼한 사이이며 나 또한 이 느슨한 연애를 즐기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제대로 큰일이 났다고, 아주 *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도망가는게 참 쉬웠는데,

이 남자에 관해서는 도망가지 못할 핑계를 만들어 내기가 참 쉬웠다.

그렇게 여덟 달을 보내며,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삶에 녹아들고 있었다.






연애 기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다툼을 회피하는 성향 탓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정서적인 거리감을 지키고 싶었던 탓이었던 것 같다.


연락이 하루 정도 끊기는 것은 예사.

하루에 메시지는 많으면 5개 정도, 전화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하지 않는다.

따로 정해놓은 룰도 없는데, 주중에는 만남 약속을 잡지 않았고,

주말 약속은 매주, 동일한 시간, 비슷한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일 즈음에는 그 주 주말 일정을 묻고 데이트를 잡았다.

반 년 정도, 우리는 이 암묵적인 규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남자(혹은 현 남편) 또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마음을 주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덤덤하게, 부담없는 태도를 취했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가벼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키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인간관계, 특히 연인 관계에 대해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 있던 두 사람은

자기 방어를 위해 담백하고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각자의 마음을 인지한 후,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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