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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Jul 04. 2023

인도는 배꼽냄새다! (3편)

'동생이 전하는 인도의 매력'

1-2편은 읽고 오신 거죠? ㅎㅎㅎ


 



'인도'에 와서 인도를 여행할 생각에 흥분하는 게 아니라, 빨리

 '인도탈출' (EXODUS)을 꿈꾸는 기막힌 상황!


거대한 인도를 여행하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 그리고 모처럼 제대한 동생과 맛난 거 먹으며 여행을  즐겨야 하건만, 열악한 상황에서 그 무엇도 제대로 못해주는 미안함등이 뒤엉켜 괜한 짜증과 화가 샘솟았다.


 동생도 본인 혼자라면, 포기하고 불편한 상황을 견디겠는데, 누나가 너무 힘들어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그러는 와중에 발견한 것은 호텔 로비에 있는 "TOURIST INFORMATION DESK'였다.


인도 곳곳으로 가는 다양한 여행상품을 만들어, 일정수의 고객이 모이면 단체로 투어를 가는 거였다.


반가운 마음에 상담을 의뢰했지만, 당시 출발 가능한 숫자의 고객이 모집되지 않은 상황이라, 출발 가능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직원은 개인기사 겸 가이드를 고용한 고급리무진을 렌트하면, 우리 남매만 이틀정도 유명 관광지 투어를 해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조심스레 가격을 물어보니, 역시나 '인도물가'인지라 충분히 수용가능한 가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무더위와 각종 소음/매연등에 쪄들어 우울했던 우리는 에어컨 나오는 쾌적한 승용차에서, 싹싹하고 친절한 가이드의 특급 서비스를 누릴 생각에 그저 행복하였다.


어디를 가장 가고 싶냐는 질문에,

'인도'에 가면 무조건 방문해야 한다는 '타지마할'을  일단 외쳤다.


 그러자, 가이드는

자기가 알아서 주변 관광지나 로컬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다 알아서 구경시켜 줄 테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치고 있었다.


눈치껏 알아서 챙겨준 '두둑한 팁'때문에 더욱 신난 거 같기도 했다.



그렇게 이튿날, 우리는 '타지마할 궁전'이 있는 무굴제국의 수도 '아그라'로 향했다.


그때  마주했던  고느적한 '시골풍경'과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슬럼가'등이 인상적이었다.


'소'의 천국답게, 도로를 유유히 겁 없이 물소 떼가 다 지나가시도록 긴 시간을 차를 멈춰가며 기다렸던 상황.


언제나 소똥이 낭자했던 도로의 모습.(소똥도 '축복'이라 하였다.)


비쩍 마른 체구의 농부들이 일하러 가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방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모습.


차가 잠시라도 멈춰 있으면 뭐라도 좀 달라고 창가를 두드리며 구걸하던 아이들..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을 거 같은 쓰레기 더미 속을 사람/개/소/돼지 가 뒤엉켜 파헤치던 모습...

그 속에서 피어오르던  악취와 회색빛 먼지들.


그 와중에 천진한 눈망울 아이들까지...


지금 눈감고 떠올려보니 나타나는 환영들이다.




또다시, 그렇게 달리고 달려..


우리는 대망의 '타지마할'궁전에 도착하였다.


'타지마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아름다운 왕궁 안으로 진입한 느낌이었다.


 온갖 소음은 다 차단된듯했고 후덥한 날씨마저 괜스레 쾌적하게 느껴질 정도의 마법 같은 궁전이었다.


"이 묘한 느낌은 뭐지?" "이래서 '사랑의 금자탑'이라고 하는구나!"

"샤 자한 왕의 뜨거운 아내사랑이 느껴지며 내 심장도 벌렁댔다.


'타지마할을 보지 않고 인도를 떠난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오게 된다!"라는 말에 절대적 '동의감'도 생겨났다.


지은 지 300여 년이 지났다는데, '시공을 초월한  황홀함' 그 자체였다.


마치 갓 세워진 듯, 세월을 느낄 수 없는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여행객들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가이드는 1992년 영국 다이애나비가  방문해서 사진 찍은 '명당좌석'도 알려주었고 , 나도 그곳에 앉아 사진 찍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남동생이 찍은 건지, 가이드가 찍은 건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타지마할'이 정말 아름답게 나와서 소중히 아꼈던 사진인지라 여기에 살짝 투척해 본다.




사진 오른쪽 모퉁이에 찍힌 날짜를 지금 보니, 1994년 8월 2일이다.

정확히 30년 전이다.


진정 감회가 새롭다.



                                  위 사진은 다이애나비와 그녀의 아들 윌리엄 왕세손 부부


 



모처럼  함빡 웃어보는 나에게 가이드는 계속계속 "Are you happy?"라고 물었다.


'행복'을 중요시하는 '인도식 인사법'이라 했다.

대충대충 성의 없이 "ok ok  I'm happy " 라며 얼버무려 버리면,

"Are you sure?" 하며 걱정스럽게 몇 번이고 반복하여 나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써주었다.





타지마할 궁전을 나와서는  인도에서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악바르 대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했다지만, '톡'하고 건드리면 넘어질 듯 부드러운 물결감을 가진 아름다운 붉은 요새!! (대문 사진 참조)



하지만, 우리를 반겨 달려오는 건 온갖 기형적인 모습의 인도 걸인 아이들이었다.


'왕손'을 가진 아이, '왕발'을 가진 아이, 엉덩이에 '꼬리'가 달린 아이, 배에 '팔'다리'가  달린 아이... 등등


 세상에 있는 온갖 종류의 '기형아 전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흉측한 모습에 쇼크를 받았고, 가슴이 아팠다.

(사진 :혐오주의! 당시 실제로 보니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측은한 마음에, 몇몇 아이들에게 돈을 주니, 어디선가 벌떼처럼 수십 명의 기형아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기겁하고 놀라는 우리에게 가이드는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

한 명에게 주면, 순식간에 소문이 번져 수십 명이 달려오고 결국 그 돈도 포주에게 다 뺏기는 거니, 차라리 과자등을 사서 주라고 했다.


걸인 아이들의 놀라운 기형모습에 대해 원인을 물어보니, 1400 년간 이어진 '무슬림의 근친혼'이 원인이라고 알려줬다.

더불어, 오염된 물을 마신 원인이라고도 했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음료 페트병에 썩고 고인 물 등을 아무렇지 않게 마셔대던 아이들이 수시로 보였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인도여행'중 가장 큰 쇼크를 받은 현장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부분이다.




가이드 덕분에 청결상태가 과히 나쁘지 않은, 식당을 다니긴 했지만, '카레'나 '닭고기'등 같은 메뉴만을

계속 먹기도 힘들었고, 내 입맛에 맞지도 않아 많이 힘들었다.


계속 콜라와 초콜릿, 바나나 등으로만 연명했던 거 같다.


다만, 노점 과일가게에서 팔던 '사탕수수'가 입맛에 맞아 계속 물고 빨며 다닌 기억도 있다.



이 정도가, 내가 머리를 쥐어짜며 되살려본 '인도'의 추억이다.


이후, 나는 휴가가 끝나, 방콕으로 돌아왔고, 동생은 갠지스강을 보기 위해

 '바라나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후  한 달의 인도여행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온 동생은 내게 말했다.


(목숨은 무사했지만, 본인도 각종 벌레 진드기에 물리고, 소매치기도 당하고 옴청 고생했다고 함!)


"솔직히 누나와의 '인도여행'은 도저히 '찐 여행'이라고 할 수 없어!

매우 편하긴 했지만,  "그건 FAKE 야!"

"고급 리무진 타며, 좋은 호텔에서 호사하며 느낀 인도가 어떻게 제대로일 수 있겠어?"


"그럼 네가 느낀 진정한 인도여행의 의미는 뭔데?"


"음!!..

 인도는 '배꼽냄새" 같아...

'안 좋고 꺼려지지만, 자꾸 맡게 되는 이상한 중독'같은 거?....





SI.

요새 인기리에 방송 중인 '기안 84'의 인도여행을 보며 떠올려본 저의 '인도 방문기'입니다.

 다소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끄집어낸 '회상'이기도 하고요.


동생이 요약해 준 인도의 매력은...


1. 거대한 인구/면적의 인도답게 그들이 뿜어내는 생활상/종교/음식 등이 매우 다채로워 마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2. 극상위층과 극하위층의 공존/여전히 존재하는 카스트(계급제도)를 순응하고, 욕심 없이 겸허히 극복해 내는 서민들의 생활상에서 '삶'에 대해 수없이.. 없이 생각했다 함.   


3. 당연하듯, 하염없이,늘..지연되는 열차를..아무런 미동이나 조바심없이 ..평온한 얼굴로 기다리는 그들과,..같은 상황에서  조바심내며 이리저리  무슨일인지 뛰어다니는 본인이 비교되며..투쟁하듯 치열하게. 삶을살던  과거의 본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하게 됨.



3. 특별히, 갠지스강 주변에서 시체를 수몰시키거나 화장하고, 대소변을 보고, 또 그 강물로 양치를 하고 목욕을 하고 기도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이기도 했지만, 또 그렇게 그들을 움직이는 위대한

 '종교의 힘'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함.


**여행당시는 매우 힘들었지만, 떠나오며 왠지 자꾸만 뒤돌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부족한 글,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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