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by 박은영


이제 그만하자

어차피 우리는 떨어지고 있다


오늘 조금

내일 조금

모레 조금


아주 간절하고 짙게


우리 거짓말했잖아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으로


그때 어땠어?


네가 아닌 너를 설명해야만 했을 때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해야만 했을 때 너의 가치를 팔아야만 했을 때 우리가 우리가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했을 때


너는 네가 아니게 되고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


바로 그때 말이야


나를, 그리고 너를 위한다면

우리는 떨어져야 해


졸업식에서 받았던 프리지어 다발이 떨어지고 꽃잎이 말라 부서질 때


너와 내가 거짓은 아닐 거라고


우리가 지쳐 쓰러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될 때 아주 오랫동안 흰 벽을 마주해 모든 언어를 잊어버렸을 때 그래서 네가 너를 설명할 수 없고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을 때


그제야


너는 네가 되고

나는 내가 된다


어차피 우리는 만날 것이다


아주 흰 바닥에서


매거진의 이전글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