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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Dec 04. 2023

책임감 배우기

책임질 존재를 만난다는 것

오늘 아침에 의자에 앉아서 근무하던 중 순간 아찔하며 어지러움이 머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바로 사라지지 않고 둔하게 남아서 약간의 시야의 흔들림까지 동반하게 하고는 점점 사라져 갔는데 증상이 있던 그 잠깐의 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생각 중 가장 많은 지분은 역시나,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진 함께 해줄 수 있길.'이란 생각이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과 생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거의 평생을 살아왔던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도, 사춘기도,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때까지. 그러던 내가 다른 이들의 시선에 조금 자유로워졌다라고 느꼈던 건, 결혼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이후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듯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면, 결혼이란 어마어마한 일을 겪어서, 라기보다는 나를 안정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으로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신혼 때 크게 싸울 때마다 휘청거림을 겪긴 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자존감도 함께 강화가 되었달까. 그렇게 어느 순간 나는 거울을 보며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의 반곱슬머리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편, 그와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결혼 이후 내 삶이 스스로만 잘해서 될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는데, 아이를 만나고선 어마어마한 무게로 밀어닥친 것이 바로 책임감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늘 오늘 죽어도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결혼을 해서 배우자가 있지만, 크게 나쁜 기억을 안겨주지 않고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더 살지 못한 아쉬움은 있겠지만 사실 뭐 그리 크게 아쉽겠는가 싶어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죽은 다음의 현실과, 죽음으로 인해 만나지 못하게 될 나의 아이의 미래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사실 이 변화는 나에게 실로 어마어마한 정도여서 이 두려움을 처음 내 안에서 느꼈던 순간은 너무나도 얼떨떨하였다. 나의 평생을 죽음에 대한 쿨한 마인드로 살았는데, 이 작은 존재가 진짜 내가 가진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버리는구나 싶어서 얼떨떨하다 못해 무서운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나서야 이 모든 감정의 이름이 '책임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이란 것을 제대로 마주하게 될 때 얼마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거움을 느끼게 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 겁을 지레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부분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에게 그리고 이후 학창 시절을 겪으면서 수업으로, 선생님에게 말로 글로 배워왔던 '책임감'이란 존재를 실제로 겪는다는 것은 삶이 바뀌게 될 수 있는 실로 큰 일이니까.


그렇다면, 나처럼 아픈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버거운 것은 무조건 회피하려고만 하는 성향에게 이 책임감은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사실 나는 미래가 너무 빤히 그려져 보여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힘들게 뻔한데 왜 그 길을 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피하지 못하고 결국 닥치게 되었을 때는 신랑에게 여러 번 누차 당부를 했었다. 나는 잘 키울 자신이 없으니 네가 키우라고.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를 사랑하게 된 나의 이후의 삶은 이전 글에도 몇 번 이야기했듯, 생각보다는 할만하고 기대했던 것이 없으니 행복하다는 느낌을 자주 가지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때때로 숨 막힐 듯 힘들긴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그로 인해 나의 삶을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때때론 이렇게 깨닫는다. 어떤 관념, 추상적일 수 있는 개념들은 겪어봄으로 인해 온전히 그 의미를 알게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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