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있지 아니함
사진으로도 채 담길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하삐"하며 할아버지 품에 쏙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는 아이의 모습과 그런 아이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품으시며 웃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그렇고, 그런 두 사람을 못 말린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할머니도"라고 하며 아이와 이마뽀뽀를 시도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그렇다.
지난 글에서 1년간 맺어왔던 인연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을 소개했었다. 그리고 그 글의 한중간에 잠깐 등장했던 순간이, 기어코, 왔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그 순간을 맞이했으면 좋았을 텐데, 요 며칠 아이가 아파서 정신이 없었던 데다가 저녁 먹고 먼 길을 내려가셔야 하는 상황이라 내 마음이 분주하여 경황이 없었다.
그리고 두 분을 보내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그 부재를 절절히 느끼며 나는 먹먹함을 채 삼킬 수 없이 머금고 있었다.
세어보니 22개월간의 시간이었다. 가까이서 삶을 나누고, 격대육아를 몸소 실천하시기 위해 먼 길을 매주 오가셨던 것이. 부재를 느끼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도 참 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아이는 꽃망울이 터지듯 밝게 자라났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답게, 사랑을 마음껏 받은 아이답게.
먹먹함 속에서 문득, 이 모든 시간이 시작되기 직전이 생각났다. 당시, 생후 3개월이 채 안된 아이를 두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나와 아이를 돕고자 기꺼이 육아에 함께 해주시기로 한 양가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놓고 보니 아이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게다가 할 줄 아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어서 모든 것을 다 해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세세하게 아이를 케어해 주실 수 있을까, 아무리 아이를 키워본 분들이라 해도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시간인데 괜찮으실까. 그런 걱정이 앞서서 오시기 전주에는 모두를 집에 오시라 하여 인수인계의 시간까지 갖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이런 깊은 부재, 를 느끼게 될지를.
까지 생각하고 나니 먹먹함이 되려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남겨놓지 못했음이 아쉬워졌다. 반복되다 보니 눈으로 잠깐씩 담고 지나쳤던, 일상적인 모습들이었는데 이제 그리 자주 보지 못하는 비일상이 될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탓이다.
정리해야 하는 것이 한가득한 늦은 밤, 먹먹함에 채 어쩌지 못해 식탁 앞에 앉아있는 나의 어깨를, 아이를 재우고 나온 신랑이 토닥이며 말했다. "앞으로도 오시고, 우리도 찾아갈 거잖아." 하지만 이내 나의 감정이 뭔지 알겠노라면서 먹먹함에 전이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 번의 작별이 더 남았다. 오늘부터 내일모레까지는 친정엄마가 올라와 계실 텐데, 엄마의 모습을 눈으로, 가능하면 사진과 영상으로도 남겨놔야지.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에게 묻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먼 길을 마다하고 달려와주셔서는 시간과 마음을 몽땅 내어주셨던 부모님들 덕분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한 장(Chapter)을 덮는다. 그리고 맞이할 다음 장에서는 함께하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지만 더 큰 행복과 기쁨을 나눌 수 있길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