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가지고 폭넓게 지원했다, 흘러가듯, 할 수 있는 곳에서 재밌게 해 보자는 마음으로.
4번째 회사는 조급하게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구직시장에서 이제 쌩 신입은 아니었으니 거기에서 오는 무형의 안정감(?)도 있었을 거다.
새로운 기회들이 오기 시작했다.
덴마크 문구 L사, 프랑스 패션 D사, 미국 콘텐츠 W사, 독일 자동차 B사 등 꽤 많은 회사의 면접을 봤다.
그중 진행이 잘 되어 가던 곳은 미국 엔터 S사와 스웨덴 패션 H사.
공교롭게도 하고 싶은 일 하나, 할 수 있는 일 하나씩 기회가 온 거다.
미국 엔터 S사, 거미 인간으로 유명한 그 영화 제작 및 배급사.
한국 시장에서 제작 분야는 손을 뗐지만, 그래도 강력한 IP를 바탕으로 영업, 마케팅 부서는 살아있는 네임드.
1차를 거쳐, 2차 대면 면접 진출, 한강이 보이는 IFC 빌딩에서 최선을 다해 어필을 하고 왔다.
며칠 후 불합격 메일이 왔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민해봤지만, 영화 쪽 경력이 있는 사람을 최종 면접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럴 거였으면 왜 서류 단계부터 날 거르지 않은 건가.
저 피드백을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해당 경력을 쌓아야 하는 건가,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곳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스웨덴 SPA 브랜드 H사.
N사 한 줄이 생겼다고, 패션 쪽에서 꽤 연락이 오고 있었다.
1차, 2차를 거치며 다소 부족한 경력임에도 나를 잘 봐준 한 사람 덕택에 최종 면접까지 진출.
중간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종 합격.
레퍼런스 체크 부탁을 위해 연락드렸던 N사 분들도, 그들의 (전) 계약직 주니어의 쾌거에 축하와 격려를 해주셨다.
정규직.
마침내 꽤 탄탄한 회사의 이 타이틀을 거머쥔 게 20대 후반의 나로서는 퍽 자랑스러웠다.
이곳에서 나의 인생과 커리어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3년간의 프로 구직러 생활을 한 나는 한 곳에 몇 년이라도 진득하게 정착하고 싶었다.
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