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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매니저와의 갈등 속편

그녀에게 억울한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복수(?)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인지를 시켜줘야만 한다.

내가 프로베이션을 통과하기엔 충분한 성과가 있다는 걸.


내가 몇개월 동안 한 일을 혼자 정리해 봤다.

그리고 ppt를 만들었다 - 내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ppt를 만든 건 처음이었다.


어느 부분이 미흡했고,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지 위주로 나름 스토리 라인을 짰다.

데이터 분석 툴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 사수가 흘러가듯이 그녀에게 나의 보완점이라고 한 걸 가지고 몇 달째 우려먹는다.


2주 후 그녀와의 1:1을 했다.

역시 치밀한 준비는 자신감을 준다, 말이 술술 청산유수였다.

나의 어필을 다 들은 그녀는 한마디 했다.



어 그래 잘했네, 수고 했어


???

진심인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약 올랐다.


나 혼자 약 올라서 불이 붙어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게 다라고?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 같아서 짜증이 났다.


나는 다시 물었다.



2주 전에 했던 피드백과 많이 다른데? 정말 내가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사실상 프로베이션을 통과했고, 이제 함께 잘해보자는 의미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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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내 매니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정신이 없고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사람의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면, 괜히 나만 피곤해진다.

혼자 열받아봤자 손해일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사이 같으니 잘 적응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매니저로 있는 이커머스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는 꼭 영화사에 가보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고집에 가까웠다).

그래서 계속 기회를 찾고 있었고, 그러던 중 링크드인을 통해 영화계에서 오래 일한 분과 커피챗을 하게 되었다.

이 업계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건, 예전에 최종 합격했지만 입사하지 않았던 영화사 A사의 면접 이후 처음이라서, 꽤 설레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2023년 초, 늦겨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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