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회사의 조직 구조는 다양하다.
어떤 회사는 영업, 이커머스, 마케팅 등을 기준으로 팀을 나누기도 하고,
규모가 큰 회사라면 내부에서 보유한 브랜드별로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H사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이 회사는 ‘컨셉’을 기준으로 팀을 나눴다. 예를 들어 mens, ladies, baby & kids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컨셉을 중심으로 영업, 마케팅, 이커머스, 미디어 팀이 TFT처럼 묶여서 움직였다.
나는 입사 초기 ‘mens’와 ‘home’ 컨셉을 맡았다.
남성복과 홈 데코레이션 용품을 다루는 일은 비교적 수월했다. 다 적접 써봤던 것 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먼저 1:1 미팅을 요청하는 일이 거의 없던, 그 애증의 러시아 매니저가 갑자기 미팅을 제안한 것이다.
뭔가 쎄했다
그리고 미팅 자리에서 그녀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로 ‘divided’ 컨셉은 네가 맡아주면 좋겠어. 새 팀원이 들어와서 업무 분담 차원에서 네가 담당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
‘Divided’라고 하면, young ladies 컨셉이라고 해서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만든 라인이었다.
전체 매출 비중에서 5%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카테고리. 게다가 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관심조차 없는 여성복이었다.
그래서 더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 매니저는 늘 그랬다. 예고 없이, 불쑥불쑥.
하지만 회사원이라는 게 까라면 까는 것 아닌가.
일단 “알겠다”고 했고 서둘러 인수인계를 받았다.
사실 내 성향은 한 가지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몇 달 동안 비슷한 일만 하다가 새로운 걸 맡게 되니 조금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팀에서 다시 출발하게 됐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요즘 세상은 한 분야만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여러 가지를 두루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더 선호하는 게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