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야 Aug 02. 2022

유기 수저를 닦으며

 신혼집에 들어가면서 유기 수저를 샀었다. 결혼 전에도 그릇, 커트러리 같이 아기자기한 것에 취미가 없던 내게 왠지 모르게 좋아 보였던 것이 유기 수저였다. 나는 은근히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유기 수저는 튼튼하고 실용적인 데다 군더더기 없는 한국적 미가 돋보이는 아이템이었다. 마침 신혼집의 인테리어를 오크 나무를 기본 톤으로 금색 포인트를 주어 연출했었는데 여기에도 잘 어울려서 유기 수저를 꺼낼 때마다 생활에 다소곳한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유기 수저는 변함없이 튼튼했다. 다만 아쉽게도 거뭇거뭇 한 얼룩이 생겼다. 처음에 작은 얼룩이 생겼을 때는 조금 찝찝했지만, 아끼던 아이템이라 버리진 못했다. 변색된 숟가락을 덜 사용하기로 하면서 수저통에서 자리를 지키게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다른 수저들에서도 변색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유기 수저의 수명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미련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엔 그랬다.

 어느 날,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필집을 읽는 중에, 유기는 주기적으로 초록 수세미로 닦아주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전수받은 것이다. 당장 집에 돌아가서 수저통을 지키고 있는 유기 수저들을 초록 수세미로 닦을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유기 수저를 버리지 않고 쓸 수 있게 된 것도 기뻤지만 앞으로도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더 뿌듯해졌다. 이런 실용성까지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기 수저를 선택했던 내 직감이 꽤 쓸만했다는 만족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비슷한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 공유하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도 더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수저를 모두 꺼내 닦았는데 놀랍게도 변색된 부분이 깨끗이 지워졌다. 유기를 닦을 때는 빗질을 하듯, 유기의 결이 상하지 않도록 한 쪽 방향으로 쓸어 닦는다. 나는 이 과정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얼룩이 지워질수록 내 기분도 정화되는 것 같았다. 마른 광목으로 수저의 물기를 닦아내니 유기 본연의 색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유기는 왜 변색이 될까? 유기 수저는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기능성 제품이었다. 유기는 독성에 반응하거나 간을 너무 짜게 한 반찬, 뜨거운 열 등에 의해 변색된다고 한다. 가족 중 특정인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 변색되기도 하고, 식중독 균을 항균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한국적인 것을 은근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나는 한국적인 것이 매우 다.

 유기 수저가 변색되는 이유를 알고 나서, 나는 유기 수저를 닦는 것을 하나의 의식으로 여긴다. 너무 빨리 변색되는 것 같으면 혹시 요즘 식습관에는 문제가 없는지 돌아본다. 얼룩을 닦으면서 그 간 내 마음에는 얼룩이 생기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건 아닌지. 거친 수세미로 마음을 결을 다잡으며 검은 얼룩을 벗겨내어야 하는 건 아닌지. 혹시나 얼룩이 검게 끼었더라도 큰 걱정은 말아야지. 공을 들여 잘 닦아내면, 은은하게 빛나며 나름의 나의 색을 드러내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