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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찬 Aug 05. 2023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자퇴해야만 하는 이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자퇴한 사람의 커리어 이야기

사실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학교 열심히 다니세요 고등학생 여러분) 가장 관심이 잘 끌릴 만한 제목인지라 적었구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스토리를 지금 뭐 하고 있는지와 함께 한번 써볼까 해요. -요 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브런치는 정보 전달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다 보니 조금 부드럽게 쓰려고 노력중이예요...


간단한 소개를 먼저 드리자면, 저는 서울에서 혼자살고 있는 04년생 한국나이 20살 남자 사람이예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021년부터 풀타임 커리어를 시작했고, 현재는 사일런티스트라는 업력 5개월차 시드 라운드를 막 지난 작은 스타트업에서 공동대표로 재직하고 있어요. 또 관련 분야의, 1300명 규모의 퀀트 트레이딩 커뮤니티 Quant.start()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기도 해요.


2023년 기준 보통 대학에서 새내기 생활을 즐겨야 할 나이인데, 저는 팔자가 열심히 구를 팔자인지 사회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네요. 그래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간단히 정리를 해볼까 싶었어요.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

"ChatGPT를 여러가지 태스크들에 적용해보고 LLM 기반 서비스도 개발하면서 이제 정말 컨텐츠는 라이프 스토리밖에 남지 않았구나 싶어서 미리 써두려고" 라는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그냥 요즘 갑자기 쓰고 싶었는데 짬이 났다는 다소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삶에는 각자의 기준이 있으니 잘 살고 있다, 좀 잘못살고있다, 누가누가 더 잘사냐 하는 것이야 스스로에게만 하면 되겠지만, 조금 특이한 루트로 살다 보면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몇가지 FAQ들을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오늘은 그 FAQ에 답하는 형태로 글을 써볼거예요.


어쩌다가 코딩을 시작했어요?

어쩌다가 코딩을 시작했어요? 어쩌다가 이런 진로를 택하게 되었어요? 라고 굉장히 관심있게들 물어보시고 (특히 나보다 한 4~7살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이) 굉장히 특별한 답변이 있겠거니 하고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정말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어쩌다 보니... 라고 말씀드리는데 사실 정말 그것밖에 할 말이 없어요. 학교에서 가끔 코딩/정보 관련 특강 있고 그런거 잘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그냥 한번 따라해보기 시작했어요. 주변에 딱히 그런 일을 하던 사람, 이끌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그러다가 그때 (중학생) 당시에 드론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서 여기에 직접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올려보고 싶었어요. 되게 다양한 기능이 들어가 있는 완제품은 제 얇은 용돈과 지갑 사정으로 불가능한 옵션이었기 때문에, 그런 완제품에서 가능한 기능들을 구현하려다 보니 영상처리가 필요했어요. (얼굴 보고 따라다니는 그런 걸 똑같이 구현해 보고 싶었거든요.)


영상처리를 하다 보니 당연히 머신러닝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저는 게임도 (잘하는 게임은 지금도 전혀 없지만) 좋아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머신러닝 분야 중 "강화학습" 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어요. 수학도 뭣도 모르지만 대충 코드를 여러군데서 복붙해다 돌리는 수준은 되니 그냥 무작정 기본서 하나 사서 전혀 이해도 안되는 수식에 기반한 예제를 돌리면서 놀았어요. (요즘도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파이썬과 케라스로 배우는 강화학습' 초판본이였을거예요). 


예전에 비전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커뮤니티 (VAIS 감사합니다) 가 있어서, 강화학습을 공부하면서 커뮤니티도 만들었어요. 현재는 한국 최대의 강화학습 커뮤니티가 되었고, 아직도 1500명 가량의 회원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코드도 자꾸 보고 수식도 자꾸 보고 맨땅에 헤딩하다 보니 딱히 기초는 없는 상태지만 어느정도 강화학습 알고리즘들이 동작하는 플로우도 보이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뒤에 더 이야기하겠지만 그걸로 학생때 인턴 잡도 좀 했었구요.


그러다 보니까 도메인 하나만 잡고 파고 싶더라고요. 그때 코로나때여서 벌어둔 용돈으로 주식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해왔던 뭔가로 퀀트 트레이딩 하면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지나와서 보면 그 결정 자체는 크게 좋은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쭉 써봤는데요, 뭔가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없었어요. 하다 보니까 할수 있는게 보이고 (그래서 "데이터, 최적화" 라는 코어한 분야 외에 다른 분야로 넘어간 케이스는 없습니다), 그럼 잠깐 발만 담궈보고, 안되면 금방 싫증나는 성격이라 빨리 접어버리고, 잘 되거나 재미있으면 더 해보고 하다가 천천히 제가 할 수 있는 코어한 분야를 쌓아가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왜 해야 되는지 생각하고 나서 하지 말고, 하면서 왜 해야 되는지 충분히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내가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으면 그때 "빠르게" 접는게 얻는게 많을테니까요.


어떤 커리어를 밟았나요?

커리어의 기준은 "돈 혹은 투자를 받고 하는 일의 히스토리" 정도로 할게요. 


어둠의 과제 외주

처음 일을 해서 돈을 벌어본 건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쯤 때 어둠의 익명 외주사이트 같은 곳에서 대학생, 대학원생 분들의 과제를 대신 해줘서 돈을 벌어봤어요. (어릴 때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지가 별로 없을 때니 미리 용서를 구할게요)


제목과 연관해보자면 아마 이때부터 대학과 제도권 교육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대충 몇개월 독학하니 대학/대학원에서 내준 과제 다 풀리는데? 클레임 없고 가끔 감사인사(?) 도 오는데? 라는... 어린 마음에 오만한 생각을 좀 했었던것 같아요.


그분들에겐 몇시간에서 몇일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저는 매일 그런 과제의 패턴들을 보고 있고 나름의 템플릿과 라이브러리까지 만들어 둘 정도였으니 (물론 정확히 똑같은 코드를 준 적은 맹세코 없어요. 사고나니까요.), 짧으면 10분, 길면 한두시간 안에 다 풀릴 문제였어요. 그러니 수지타산이 잘 맞는거죠. 맡기는 사람들 입장에선 5시간 * 시급 5천원만 해도 25000원인데, 저는 그거 30분 하면 풀리니 시급 50000원 짜리 일인거거든요. 덤으로 처음 보는 문제 있으면 공부도 되구요.


농업 비전 회사

그렇게 돈 버는 재미를 조금 알았는데, 문제는 이제 너무 똑같은 과제를 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카이스트에 있는 작은 농업 관련 스타트업에서 비전 모델링을 가끔 도와드리는 일을 처음으로 회사에서 일해보기 시작했어요.


플라잎

그 다음에는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것도 뒷 문단을 참고해주세요) 2021년 학기 시작 전 방학에 플라잎이라는 성남시에 위치한 로봇팔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했는데, 대표님의 태도도 너무 인상깊었고 기술력도 좋은 회사여서 방학에 한달 일한 경험이지만 아직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꼭 유니콘 되시길 바랄게요) 강화학습 기반 로봇팔 경로 최적화 태스크를 했는데, 유튜브 보면 제가 만든 모델에 기반한게 그래도 있는 것 같아서 아직 뿌듯해요 (지금은 훨씬 좋은 모델들을 가지고 계시겠죠?)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그 이후에는 주식을 한번 말아먹고 회복하는 사이클에서 트레이딩에 대한 관심도가 확 올라가서 2021년 중순쯤에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라는 AI 퀀트 회사에서 파트타임 리서쳐로 근무했어요. 개인투자자가 구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팀 단위로 다뤄보는 경험이어서 역시 너무 재미있었고 기술적으로 많이 배우고 기여해보는 경험이었어요. (뒤에 받은 풀타임 오퍼 때문에 3달 가량 짧게 일했지만 그때 팀원분들도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정말 감사했어요). 


크러스트유니버스

교감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래요. 왜요? 하니까 일단 오래요. 가서 하는 말이 뭘 하고 다니길래 카카오 미래전략실에서 연락이 오는지 여쭤보셔요. 그때 당시에 커뮤니티에서 함께 활동하던 대덕 박사님들의 도움으로 기사 가 하나 나서 이곳저곳에서 좋은 기회가 들어왔긴 했었는데, 사실 잡오퍼는 크게 없었고 (주로 컨텐츠나 앞으로 학업 크게 할 계획 있으면 후원해주겠다 등등), 그런 기회를 주신 곳 중에 유니콘 스타트업도 있었지만 카카오 사이즈의 빅테크는 없었기 때문에 저로써도 많이 놀라긴 했어요.


그래서 삼성동 브라이언임팩트 (카카오 재단) 회의실에서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 분들, 그리고 카카오의 창립자 브라이언!! 과 함께 커피챗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크러스트라고 카카오의 새로운 글로벌 인큐베이팅 암 같은 것을 설립하는데 팀 하나 셋업해오면 거기서 하고싶은거 해보게 다 지원해주겠다라고 하고 얼떨결에 카카오 자회사의 풀타이머가 되었어요 (투자 형태일줄 알았는데 그냥 법적으로는 채용이었어요).


처음부터 Web3 업계에서 일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일단 "크립토 퀀트 트레이딩" 관련 일을 해보자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Web3을 잘 알고 관련 일을 해야만 하는 시점에 다다랐어요. 처음에는 잘 안 맞는거 같다고 생각도 하다가 또 꾸준히 하다 보니 철학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큰 회사의 특수성과 시장상황으로 인해 크러스트 내부에서 큰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후 창업하는 데 네트워크와 기반지식, 기반이 되는 프로덕트를 만들었으니 크러스트는 우리 팀에게 매우 좋은 인큐베이터였다고 생각해요. (카카오 감사합니다)


사일런티스트

창업을 한 이유도 요즘 많이 받는 질문인 것 같은데, "정말 다른 옵션이 없었다" 가 개인적인 답변인 것 같아요. 솔직히 커리어적으로는 여러가지 이직 옵션이 있었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꼭 해야겠다 하는 일이 크게 없었어요. 지금 팀을 조금 개선해서 창업을 고려한 게 우선순위였지만 그걸 내려놓고 옵션을 찾다 보니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어떻게 좋은 파트너를 만나 "원래 하려고 했던 그거" 하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어요. 이것도 사실 꼭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먼저였다기보다는, 관성이 이끌어 주었고 딱히 이거 외에는 할 수 있는 옵션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는 너무 기니까 더 궁금하신 분들은 조이너리의 "창업과 동시에 탑티어 VC에게 15억을 투자 받은 크립토 자산운용사 사일런티스트 인터뷰" 를 읽어주세요.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버지와 어머니 성격이 정말 정반대신데, 아버지는 약간 조용하게 수동적인 서포트를 해주는 편이시고, 어머니는 굉장히 능동적인 서포트를 해주는 분이셨어요.


중학교 때는 저는 학교 공부를 성실히 하고 과고/영재고 입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아 입시 자체에 집중을 못해 다 떨어졌죠. 그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된거 학교 외의 것들에 더 집중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실천했지만, 이 부분에서 어머니와는 많은 갈등이 있었어요. 학교 성적이 엄청나게 떨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더욱 학교공부 외의 것들에 매진했고, 많은 성과도 올렸지만,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외주 인턴 다 푼돈 벌어서 뭐하냐 대학이나 가라는 선생님도 계셨고, 잘 나가는거 같다가도 너는 잠깐 쓰고 버리는 카드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상당한 폭언이지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퀀트 등 바로 돈이 되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가지고 선생님들보다 더 많이 알고 많이 벌어서 숫자로 증명하기까지는 오래 걸리겠지만, 간단하게 그들이 이야기하는 종착지인 "취업해서 적당히 잘 버는 삶" 이상을 유지하는 정도의 소득과 자산을 만드는 것은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크러스트의 풀타임 오퍼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줬고, 부모님도 모두 좋아하셨고, 선생님들은 여전히 아니꼽게 보시는 분들이 있었으나 제게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셨죠.


씁쓸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이 잘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것을 느꼈어요. 가끔 이해관계가 맞을 때도 있겠지만요. 선생님 한 분이 자퇴 이후 저를 학교에 초대하려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막으셨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현재 창업을 했으니 이 일을 잘 진행시키고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이 우선 과제이고, 앞으로도 큰 계획은 없으나 지금까지 한 일들을 잘 연결하며 재미있고, 가치있고, 수익성이 좋은 일을 앞으로도 많이 찾아볼 생각이예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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