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엄마 안녕, 그리고 사랑해
무더운 8월 여름, 훈련을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이었다. 일주일 전, 엄마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심란했기에 훈련준비에 몰두하며 정신없는 아침을 보냈다. 휴가가 남아있었지만 주어진 업무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여러 상황들 때문에 선뜻 신청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할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부대원들과 식당에 앉아있었다. 또다시 불안감과 함께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위독하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러 빨리 와야 할 거 같다는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기 직전, 부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큼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며 나를 다독였다.
순간 주변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고 당장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일을 마친 상태라 교대할 시간이었기에 급하게 휴가를 신청하였다.당시 나의 근무지에서 집까지 3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기에 급한 대로 짐만 챙겨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영영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할까 봐, 무엇보다 우리를 두고 가야 하는 엄마가 얼마나 두려울지, 무서워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 없이 살야 하는 삶이 슬프고 또 슬펐다. 택시를 타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흘러내렸다.
집에 가는 그 시간이 생각날 때면 눈물이 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혼수상태였다. 어쩌면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걸 알리는 듯이 째깍째깍 벽시계의 소리가 나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언니와 나를 위해 침착하고자 떨리는 손으로도 우리를 위로했다. 어쩌면 마지막일 이 시간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눈조차 감지 못한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편히 눈 감아도 된다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나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8.15 광복절. 엄마가 유독 좋아하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멈추고 고요해진 순간 나는 급하게 엄마의 맥을 짚었다. 약하게나마 뛰는 그 맥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울음과 함께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숨결조차 사라짐과 함께 엄마가 떠나갔음을 알았다. 국경일에 나에게 생명을 준 엄마는, 8.15 국경일에 별이 되었다. 그렇게 5일간의 장례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다시 군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짧은 애도기간,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남겨진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의 슬픔조차 그곳에 두고 부대로 다시 가야 했던 그때의 심정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그리고 여전히 나의 마음 한편에 슬픔과 아픔으로 남아있다. 내가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아니면 휴학을 했더라면. 조금 더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간병도 하고 힘들어하는 아빠와 언니의 힘듦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참 바보같다. 일이 뭐라고 휴가 하나 신청하는 거에 걱정하고 미안해하고. 이렇게 후회할꺼면서 나를 원망했다.
결국 슬픔, 분노, 우울 그 모든 것의 끝에 매 순간을 선택한 내가 잘못했다는 결론으로 도달했다. 그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지만 원망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몇 년을 스스로 몰아세우며 채찍으로 엄격하게 대하며 일에 몰두했다. 남에겐 한없이 친절하지만, 나에겐 한없이 차가운 사람.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나인데 정작 남의 아픔을 토닥여주느라 정작 내 아픔은 살펴주지 못했다. 이제 조금은 내 아픔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누구나 말 못 할 슬픔이 있겠지만 다만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위로받고 싶은 건, 가장 위로해줘야 하는 건 나 자신이지 않을까.. 나 역시 알면서도 여전히 참 어려운일이다…